환언베뢰아특강

환언베뢰아특강238(220607)

lks8284 2022. 6. 8. 00:02

220607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들이 성령으로만 들을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듣게 하여주옵소서. 종의 입술에 역사하사 저들에게 진리를 말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내가 강의를 하면서도, 노파심에서 다시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소리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자기와 그 소리가 아무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도 선생님 말씀을 주의하고 들어야, 그 말씀이 지식이 된다.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흘러가는 소리가 되어,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공부를 못한다.

1970년 초 나는 대학 들어가기 위해 고민하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간단하게 말했다.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는 사람, 손들어보라니까 많이 손을 들었다.

지금 3학년인데, 2학년 때 잘했느냐고 물었다. 각자에게 언제까지 잘했느냐고 물었다.

대게 1, 2, 학습이 낙오가 되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잘하고, 2학년 때부터 떨어졌으면, 지금 3학년이라도, 2학년 처음 교과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1학년 때, 공부 잘할 때의 수준을 회복하라고 했다.

그러면, 3-4개월 사이에 확 성적이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돌 짝 가운데 떨어지고,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졌다고 했다.

길가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나, 새들이 금방 먹듯이, 마귀가 금방 빼앗아 간 것이다.

가시덤불 가운데 떨어진 것은 세상에 억눌려, 자라지 못하고, 결실치 못하는 것이다.

돌 짝 가운데 떨어진 것은 말씀을 받을 때, 기뻐하나, 환난이 오면,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지는 자다.

옥토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다.

환언특강을 하면서, 절반은 지난주 것을 반복하고, 반은 새것을 한다.

여러분을 이끌기 위해 애를 쓴다. 깨달으라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 앞에 항상 있기 때문에, 또 들을 수 있다고 안심하는지 모르지만, 안심하지 말라.

어느 순간 나는 강단에 다시 서지 못하는 날이 온다.

후회해도 다시 못들을 수 있다.

특강은 사범반이어서, 베뢰아아카데미 2년을 이수한 사람에게 문을 연 것이다.

아주 고등교육이다.

초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다.

잘 알아야 한다.

여러분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 못하면, 지난번 것도 헛들었다는 말이다.

당장 들을 때, 그 말이 신기해서, 신기하게 듣고, 그렇구나! 했지만, 뿌리가 없으면, 환난이 올 때, 넘어진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 능력도 나타나는데, 자기 교회 목사가 핍박하는 바람에 하지 않으니까, 말라버린다. 뿌리가 없어서 그렇다.

뿌리가 없으면,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핍박이 올 때, 넘어지는 자다.

세상에서 훼방을 받을 때, 그 때 역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다.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 때까지니, 하나님의 나라는 이때부터 침노를 당한다.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비유로 하셨지만, 잘 들어야 한다.

율법은 전부 말라로 되어있다. 십계명도 전부 말라로 되어 있다.

율법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침투하는 것이다.

율법은 어떤 행위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는 율법을 강화하셔서 마음으로도 탐심, 음심, 미움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율법은 강제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독재시대를 겪었다.

내가 군사독재시대를 처음 만났는데, 거기서는 머리도 기르지 마라, 옷도 짧게 입지 마라,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전에는 여자들이 브레지어를 안했다. 그 때부터 여자들이 브레지어를 했다.

군사독재로 강제로 하게 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이 있어서, 만지고 싶어 하고, 정상적인 것을 망가뜨리고 싶어 한다.

부숴서, 더 진보하고 싶어 한다. 애들은 부숴놓고, 고치지는 못하니까, 그냥 부순다.

그래서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면서, 빼앗는다.

아이들 선생을 몽학선생이라고 한다.

유모나 가정교사 같이 그 집의 일꾼이 몽학선생이다.

옛날에 왕자가 태어나면, 왕비가 아이를 기르지 않는다. 그 아이를 유모에게 맡겨서 기른다.

아이가 열 몇 살 되어, 세자가 될 때까지 계속 몽학선생 아래에 둔다.

앞으로 임금이 될 사람이라도, 매질도 하면서 가르친다.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이다.

율례는 육체의 예법을 말하는데,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는 율례를 주셨다.

율법은 육체의 정욕을 절제하도록 강제한다.

 

복음은 하라는 것이다.

말라는 소극적인 계시지만, 하라는 적극적인 계시다.

천국을 침노하라.

아무것도 모르다가,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듣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가면 불의가 드러나니까, 하지 말라 하면서 몽학선생 아래 들어가게 된다.

,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그렇게만 가르친다.

하지 말라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한다.

그것은 여전히 몽학선생 아래에 있는 것이다.

몽학선생 아래 있을 때는 후사의 권리가 있을지라도, 후사의 열쇠는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침례 요한까지로 끝낸다.

침례 요한 이후로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를 당한다.

율례를 통해 강제로 억압하는 몽학선생이 아니라, 하늘을 네가 침노해야 한다.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헤롯왕도 요한을 선지자로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다.

어린양은 하나의 비유다.

요한은 많은 선지자 중에 가장 큰 자다. 다른 선지자는 예수를 본 적이 없다.

침례 요한만이 예수를 보았고, 예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켜서 밝히는 등불처럼 지극히 적은 것이다.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5: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 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5:32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5: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였느니라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5: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것이요

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 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 함이니라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 하는도다

5: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침례 요한이 진리에 대해서 증거 했지만, 사람이 켜서 밝히는 등불에 불과하다.

대낮에 등불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요한이 아주 큰 자이지만, 사람이 켜서 밝히는 등불에 불과하다.

모세 이후 침례 요한까지 선지자들은 다 모세의 제자들이다.

모세와 선지자는 침례 요한으로 끝이 난다.

그 때까지 전부 몽학선생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강제로 억압해서 쑤셔 넣는 것이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를 당한다.

율례와 법도를 배우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 하였느니라

 

몽학선생 아래 있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신앙생활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벌 받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있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심판받는다.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침노는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랑에 깊게 빠지면 눈이 먼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자기가 능동적으로 한다.

하라, 말라 할 필요가 없다.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다.

이제부터는 하늘나라를 찾고, 부르짖고, , 더 충만, 내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더 충만하도록 나가야 한다.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육체의 정욕을 가지고 있고, 육체의 소욕이 있다.

그래서 새벽에 기도할 때마다, 마음으로 잘못 생각한 것도 회개하고, 행동으로 잘못한 것도 회개한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갖고 있지 않다.

내 얼굴과 내 믿음생활을 보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여러분 연애할 때, 사랑하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육체의 정욕으로 사랑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내가 두려움이 없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 없으면 못산다. 그분이 없으면 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다른 사람은 예수를 비난했지만, 그는 죽어가는 예수를 사랑했다.

따라가고 싶어서, 당신의 나라에 가시거든 나를 기억 하소서 말한다.

심판받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정욕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서로 상대 속에 들어가기 원치 않는가.

네 마음속에 내가 가득하기 원한다. 내 속에도 네가 충만하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것이다.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으라 하신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자.

 

아이들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좋아하지만, 무서워한다.

엄마가 아이들을 다룰 때, 아버지 오시면 일러서, 혼내주라고 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려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출을 해서라도 따라가려고 한다.

이제부터 천국을 침노하라.

적극적,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성간에 서로 연애하더라도,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신뢰하면 아주 사랑한다.

그래서 서로 신뢰를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신뢰를 잃어버리면, 일생 원수로 살게 된다.

오죽하면, 자기 남편을 핸드폰에 웬수라고 기록하는가.

그만큼 신뢰를 잃어서 그렇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억압받고,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고, 내가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인지, 사랑하는 사람인지 자세히 보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형벌(심판)이 있다.

주인이 타국에 갔을 때, 종은 주인이 맡긴 일을 한다.

혹시 일을 잘못했으면, 쉬쉬하면서, 주인이 올까봐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구원은 받았지만, 심판을 받는다.

종의 신분을 얻은 자들이다.

종은 주인을 두려워한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아들만이 아버지의 일을 안다.

종의 영을 받은 자는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심판받으면, 멸망할 자는 멸망하고, 상을 받을 자는 상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에 이른다.

자기 아들을 심판하는 자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를 보내신 것은 구원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나 구원은 받았으나, 짐짓 죄를 범하면 항상 두려움이 있다.

본죄를 가진 자는 자기 양심이 율법이 되어 항상 두렵다.

복음과 계시록은 다르다.

복음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계시록은 두려움이 있는 자들이 심판받을 것을 말한다.

영생이 있는 자는 첫째 부활에 들어가기 때문에, 먼저 죽으면 영혼이 낙원에 가고, 살아있는 자는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뵙는다.

이들은 환난을 겪지 않는다. 이들은 환난 대신에 이 땅에서 목 베임을 받았다.

나는 60년간 목 베임을 받았다.

어디를 가든지, 나를 자기 멤버 속에 넣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역사하기 시작한 이래 꼭 60년이다.

나는 60년간 계속 충만하다.

사람들은 계시록을 보면서 두려워한다.

자기 안에서 양심이 율법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환난이 있기 전에 먼저 데려가실 것이다.

일생 복음을 위해서 목 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요,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핍박받는 자는 복을 백배로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

나를 욕한 사람들, 나처럼 일한 자가 없다.

그들이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던가.

다만, 도덕, 윤리, 자기 의로 칭찬받을 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환난이 있기 전에 데려가신다.

예수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자들은 심판받을 자들이다.

주님이 공중에 오시면, 먼저 들림 받아야지, 땅에 임하는 것을 보시면, 심판받을 자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사랑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기도 전에 두려워한다.

 

내가 특강할 때마다 마음에 고민이 있다.

여기 알아듣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과연 있을까.

정신 차리고,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하나를 땅에 심은 자와 같다고 하셨다.

겨자씨가 씨 중에 가장 작다고 한다.

들깨의 사분의 일밖에 안 된다.

겨자씨가 작지만, 그 속에는 겨자나무의 세계가 들어있다.

씨를 땅에 심으면, 뿌리도 나고, 가지도 나고, 잎사귀 나고, 그 세계가 드러난다.

겨자를 심으면, 자라서, 또 열매 맺는다. 그 열매도 똑같이 겨자의 세계가 들어있다.

그것을 심으면, 또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이 겨자씨처럼 작아도, 그 세계가 있다.

마태복음1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세계라고 했다.

아담의 세계에서 마침내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세계가 나왔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열매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 땅에 떨어져 새로운 나무가 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족보만 있지, 세계는 나오지 않는다.

씨는 새가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

다만 닭은 소화할 수 있다. 모래를 같이 먹어서, 비벼서 깨뜨린다.

다른 새들은 모래를 먹으면 날 수 없어서, 씨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새가 열매를 먹고, 소화를 못시킨 채, 다른 곳에 똥을 싸면, 거기서 씨가 자란다.

열매가 세계다.

그의 세상을 이룬다.

예수께서 열두제자에게 제자 삼으라 하셨다.

그들의 세계가 나와야 한다.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자신의 제자가 없으면, 자신의 세계가 없는 것이다.

족보에서도 큰일을 한 사람은 한 세계를 이룬다.

족보 안에 세계가 많을수록, 훌륭한 집안이다.

세계가 없는 집안은 몇 백 년 간 아무 훌륭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작은 씨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깃든다.

새들이 깃들면, 새들이 열매를 먹고, 여러 곳에 씨를 뿌려서 또 자라게 한다.

아담의 세계가 나왔다가, 노아의 아들 샘의 세계에서 아브라함이 나왔고, 아브라함의 세계에서 다윗이 나왔다.

 

장성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것이 자기 세계다.

 

믿음(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고, 앙모한다고 하여, 신앙이라고 한다.

믿음이 있어서 교회는 다니는데, 과연 하나님을 앙모하는가.

교회 다니다가 시험 들면, 금방 사라진다.

그는 종교인이었을 뿐이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앙모한다.

무엇을 믿음이 좋다고 하는가.

교회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뿌리가 없으므로, 말씀 때문에 환난과 핍박이 올 때, 넘어지는 자다.

믿음은 좋은데, 뿌리가 없다.

무엇을 믿는지 모른다.

알아야, 그를 앙모한다.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가 다른 점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리는 참 하나님, 예수를 보았다.

비유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는 요한과 우리와의 차이가 무엇인가.

침례 요한은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하늘에서 난 자중에서 가장 작은 자도 저보다 크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보았다.

 

나중에 주님 앞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도 했다고 하지만, 주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네가 나를 모르니, 나도 너를 모른다 하신다.

가룟 유다도 귀신을 쫓았고, 70인 제자들도 귀신을 쫓았지만, 그들이 다 십사만사천에 들어갈 자들이 아니다.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하늘에 네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다.

신앙이 없으면 언제나 타락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방언도 하고, 귀신도 쫓았다고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짐짓죄를 범하면, 회복이 안 된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는데, 다음날 제자들이 보고,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했다.

예수께서 믿으라 하셨다. 하나님의 믿음(πίστις)을 가지라고 하셨다.

신앙을 가져야 한다.

네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다면, 곧 그 세계가 있다면, 산을 명하여 바다로 옮겨지라고 해도, 옮겨질 것이다.

 

신앙이 있느냐 =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님을 다 아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사람이 되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우리나라는 왼편이 높은 쪽이고, 오른 쪽이 상대적으로 낮은 쪽이다.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이 높으신 것이다.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 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지 않으면 엉뚱한 자를 사모한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로 말미암는다. 비유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어도, 비유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예수는 율법(비유)을 더 강화시키러 오셨다.

 

4: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비유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예수를 알려면, 성령이 오셔야만 한다.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여기서 잘 들으라.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할 때, 누구를 하나님이라고 하는가.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한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말씀을 확실히 보았고, 들었고, 손으로 만졌고, 확인했다.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참 하나님은 예수시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하면, 아버지만 생각하고,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가 참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그가 곧 영생이시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17:3은 예수께서 아버지가 참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요일5:20은 예수가 참 하나님이시라고 성도가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영생에 들어가는 사람은 말씀을 보았고, 만졌고, 확인했다.(요일1:1)

여러분 요17:3의 참 하나님과 요일5:20의 참 하나님을 잘못하면 혼동한다.

신학자들도 혼동하고 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라.

 

창세기1장은 만물(우주)의 태초이고, 1:1은 그 이전 만유(하늘)의 태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만물의 태초부터 시작한다.

 

지구상에는 두가지 신학이 있다.

근본주의 신학 :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배우는 신학, 칼빈신학, 예정론, 율법을 근본으로 함

인본주의 신학 : 자유주의 신학, 미국(청교도), 감리교, 자유를 근본으로 함.

신본주의 신학 : 요한의 신학

 

청교도는 기독교지만,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다.

너무나 깨끗하고 훌륭하지만, 바리새인이 율법에 쩔어 버리듯, 쩔어 버린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외식자들이다.

예수께서 아들이 자유케 하면, 참 자유하리라 하셨는데, 예수 빼놓고, 자유를 논하니까 인본주의로 간다.

지도자들도 자기가 어떤 신학의 제자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지구상에서 요한신학을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다. 성령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못 가르친다.

근본주의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이나 계시록을 신비주의(감정적, 주관적)로 폄훼한다.

베뢰아는 칼빈 주의자에게 가장 핍박받는다.

인본주의자들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한다.

인간 위주로 보고 있다.

베뢰아는 하나님이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그를 위하여 만물을 지으셨다고 한다.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인간을 위해서라고 하면, 지옥 갈 사람이 없어야 할 것 아닌가.

하나님은 구원의 문만 열어주신 것이다.

예수가 죽으신 것은 아버지의 계명대로 죽으신 것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복 받고, 행복하고, 잘되어야하는데, 잘 안되면 원망이 나온다.

우리는 인본주의 신학도 아니고, 근본주의 신학도 아니다.

근본주의는 창1:1 만물의 태초부터 시작하고, 우리는 요1:1 만유의 태초에서 시작한다.

이것을 지도자들이 알아야, 가르칠 수 있다.

 

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 되시는가.

다음 주에 계속 할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또 시간을 주셔서 잘 듣게 하셨는데 우리 모두가 다 이 말씀을 잘 깨닫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신앙인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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