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7주일 [자랑할 것이 없는, 은혜로 얻는 구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모든 공로는 하나님께 돌려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과정중에 일부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린다.
부분적으로 자기의 역할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하신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전적으로 그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도 배반하는 것이다.
[믿는 순간 최후 구원도 확정?]
구원에 관하여 우리 성도들도 평소에 혼동하는 부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정착된 개념이 있다.
예수 믿는 순간, 영원한 구원이 확정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 믿는 날, 구원이 변동없이 끝까지 확정됐다는 생각이 상당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믿는 것 같아도, 심지어 여러해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끝까지 구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첫날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하면, 성경에 구원에 관한 말씀이 나오면, 더 이상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후에 나오는 말씀이 도무지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절대 지옥 못간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 복음전파할 때, 과거에 많이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라는 전제조건이다.
구원자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께서 유일하신 구원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예수의 구원만이 확실하다고 사도들은 강조하는 맥락에서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전제조건은 이 사람이 믿음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자이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한 자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 처음 믿는 날, 천국행이 확정된 것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구원 이야기는 필요없다고 하면 안된다.
이런 생각은 천국행을 면허증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면허증을 따기 위해, 법도 열심히 공부하고, 운전도 열심히 연습한다. 그러나, 면허증을 따고나면, 그 법도 잊고, 주의깊게 운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성도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조사하지 않는다.
교회는 그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무릎꿇고 들어왔다고 간주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함이다.
누구든지 예수 믿는 순간부터 마지막날까지 자기 믿음을 보전하려고 해야 한다.
죄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는 효과가 없는 것이다.
구원의 효과가 죄에서 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죄에서 구원이다.
그런데, 거기에 관심이 없으면,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여전히 죄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면, 구원받은 효과가 없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여전히 옛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구원을 받아서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느낌이 하나님의 심판을 거치지 않고, 통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떤 존재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이 맥락은 유대인들이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는 우리의 절대 구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주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심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맥락은 다 빠지고, 절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는 식으로만 이해된다.
기독교전통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탈락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더 많다.
히브리서 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히브리서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늘의 것을 맛보고, 발견했어도 타락할 수 있다.
히브리서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또, 짐짓죄라는 것이 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해도, 짐짓죄를 범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베드로후서 2: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요한1서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또, 어떤 죄는 그 사람을 다시 회복시킬 수 없는 사망의 죄다.
모두 믿는 자를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다.
유다서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다서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가만히 교회에 들어온 자도 있다.
다 신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이다.
당을 짓고, 육에 속한 자, 말은 성령을 언급하지만, 성령이 없는 자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가만히 들어온 존재다.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전서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서는 깨진 자도 있다.
그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
예수 믿어도, 구원을 유지못해서 탈락할 수 있다는 말씀이 성경에 무수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는 처음 믿는 날 구원이 임했다고 하고, 끝날까지의 상황을 말하기도 한다.
구원의 길은 죄와 싸우는 길이다.
또, 우리는 예수 믿는 그날부터 구원이 임해있고, 내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구원은 유지되어야 한다.
유지되지 못하면, 거기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투쟁은 예수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십자가 길을 가는 것이다.
최후 승리를 하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주의 십자가 붙들겠네.
육신이 있는 동안, 자기 육신을 이겨내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역사에 호응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전인을 구원하여, 승리로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주기도문은 주님이 신자를 위해 주신 것이다.
거기에 보면,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악한 자에게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신자라도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시험에 들면,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시험에 들고, 회복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아웃된다.
악한 자에게 빠지면, 죄로 살게 된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의 죄와 허물로 살던 자로 되돌아가 간다.
되돌아 갔을 때, 다시 돌아오는 것은 몹시 어렵다.
다시 죄에 엮어지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구원을 상실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구하시는 믿음이 있는 한, 구원이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만,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신앙적 공로가 구원을 가져올까?]
어떤 사람은 개인의 신앙의 공로가 구원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믿음이 훌륭하다, 의를 행했다, 신앙생활 오래했다고 다른 면은 부족해도, 구원을 확보할만큼 공적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로로는 절대 구원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구원은 우리 행실의 공로와 아무 상관이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내 영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자에게 구원이 작동된다.
나는 믿음이 좋으니, 최소한 구원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믿음인가?
무슨 근거로 말하는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기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믿음을 공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공로로 계수하여, 적어도 구원을 확보하는데,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런 경향이 조금은 있다.
이 정도 했는데, 적어도 구원은 있겠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행실은 물론 중요하다.
이것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보여줄만큼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이 구원의 공로는 아니다.
내 잘나고, 내 믿음이 훌륭한 것이 절대 구원을 가져오지 않는다.
내가 믿음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구원은 내가 가진 공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구원에 관한한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부지중에라도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런 것을 할 사람이 아니다.
원래 하나님의 원수된 자인데,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셨다.
이제 구원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자랑이 있겠는가.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과 협동관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나.
내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세상에서 자랑하던 자가 예수 믿는 날부터 자랑이 끊어진다.
내 자랑이 있으면, 신앙 전체를 오염시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와 영광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릴 때, 우리 구원이 거기 있다.
하나님도 보신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마음이 가득하고, 그 기쁨이 있다면, 내게 구원이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자는 거기에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 자기 육신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들 되자.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를 망치지 말고, 백프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자.
[본문]
우리 인간은 죄와 허물 가운데 있었다.
사단의 밑에서 종노릇했다.
하나님과는 원수로서, 진노의 자식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온 우주의 질서가 바뀌고, 진짜 임금이 선포하고 등장하셨다.
신기하게도 동시에 교회(믿는 자)를 하늘에 올린다는 질서를 확정하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굉장한 능력이 나타났다.
그 능력 앞에 모든 것이 무릎꿇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하늘 보좌에 올렸는데, 교회의 성도들도 올라간다.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었던 능력이 성도를 끌어올리는데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비로소 교회는 깨달았다.
교회의 삶은 그리스도의 임무에 속해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가 겪으신 사건이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육신이 죽으셨으나 하늘에 오르셨고, 우리는 영이 죽었으나, 이제 올라갈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질서, 믿는 자는 올라간다.
그래서, 온 우주는 교회의 우월성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증거물이 된 것이다.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게 하시려는 목적]
에베소서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다.
더 큰 그림에서는 그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본문에는 긍휼, 은혜, 자비가 언급되어 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임한 하나님의 노력이 있다.
그냥 은혜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풍성한 은혜다.
최상급의 은혜다.
'지극히'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 능력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다.
예수께 베푼 최상의 능력이 우리에게 그대로 최상의 자비로 나타났다.
지극히 큰 은혜의 풍성함을 앞으로 오는 온 세대뿐 아니라, 하늘과 땅에 나타내려 하신다.
오늘 이 세대를 감당하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 마지막 날에도 영광, 마지막 날에는 감추었던 영광이 드러나, 모두 함께 있는 곳에서 확인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정당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간 진행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지금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맹렬히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오는 세대에도 계속 힘을 다해 진행되고, 마지막 날에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의 크기를 전부 한눈에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엄청난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모든 은혜에 대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최상의 힘으로 완전한 은혜를 베푸시고, 앞으로 세대에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셨다.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사도 바울이 논쟁에서 많이 쓰던 말이다.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던 것을 예수의 행적과 말씀으로 정리했다.
바울은 구원은 믿음에 의한 것이라는 진리를 열심히 가르쳤다.
이것은 율법주의자와의 논쟁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에 대해서, 반박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경우에는 율법을 논하지 않고, 행위를 논하고 있다.
에베소 교회는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은혜로, 믿음으로’라는 말은 인간의 공로에 대한 견제다.
이 구원은 너희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신자들 자신은 구원에 대해서,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마땅치 않은 자에게 그냥 주시는 선물이다.
[믿음 마저도 은혜의 선물이다]
은혜가 있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것이다.
베푸신 은혜를 믿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믿음은 나의 것인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반응이 믿음인데, 심지어 믿음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었던 자였다.
죽은 자가 갑자기 숨을 쉬고 있다면, 자기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숨을 쉬게 해 준 자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죽었던 자다.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아무 영감도 없고 무능한 자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내 믿음은 내가 가진 지식, 경험, 인격에서 온 것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믿겠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없다. 무능하다. 전혀 그런 기능이 없다.
죄로 죽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베푸시는 것이다.
은혜는 인간이 일하지 않고, 얻은 하나님의 행위다.
은혜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거저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베푸신 것을 받는 것이다.
빌립보서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은혜는 공로 없이 거저 얻은 하나님의 베푸신 행위다.
은혜는 첫째 믿음을 주신 것이다.
사도행전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은혜는 근원이 하나님이다.
은혜는 예수께로부터 나온다.
[결코 자신을 자랑할 수 없는 구원의 문제]
그러므로, 구원은 절대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에베소서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교회등록된 것, 성찬한 것, 침례받은 것, 이런 신앙행위 자체는 구원을 얻기 위한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구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진짜인지는 하나님밖에 모른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달라진 나의 사는 매순간의 발걸음이 믿음이다.
반드시 행실의 증거가 따른다.
만약 우리에게 구원이 우리 믿음에 의해 약간이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엄청 자랑할 것이다.
물론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한다.
인간의 노력과 구원은 아무 관계가 없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자랑 자체를 피해야 한다.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인생 얼마되지 않는다. 여기서 자랑할 틈이 없다.
로마서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것을 생각치 말라.
지금부터는 자랑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행위는 더렵혀진 인성을 가리지 못한다]
에베소서의 경우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와 결이 다르다.
에베소서에서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바울은 행위 자체를 경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위가 필요하다.
에베소 교회와 소아시아 교회는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신기한 영적 지식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행위로 안되는 이유는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적어도 천년이상 율법으로 죄와 싸우던 사람들이다. 이방인들은 그것도 안된다.
거룩함은 택도 없다.
은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시도 자체를 갖지 말라.
행위로는 절대 되지 않는다.
행위 자체를 구원의 길로 여기지 말라.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기본적으로 너무 오염되어서, 거룩하려고 해도 안된다.
전적으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다.
성도의 특별한 지위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갖기 바란다.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다. 백프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받은 것이다.
누가 어떤 망상에 빠뜨리던지, 너희에게는 예수 밖에 없다.
자기 신앙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이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최후의 목적을 배반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이 얻으시려는 것은 우리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영광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신앙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로마서에서는 율법을 의를 얻는 구실로 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고린도서에서는 인간의 지혜에 대해서 반대한다.
로마서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로마서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결국 성경은 자랑을 절대 배제하고 있다.
내 믿음에는 절대 자랑이 없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므로, 거기에 내 자랑이 있으면 안된다.
[은혜는 자랑을 뿌리뽑는다]
자랑하는 자는 주님을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린도전서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훌륭한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내게서 온 것은 없다.
고린도후서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내 연약함을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인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자랑을 배제한다.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이 우리에게 돌려지면 안된다.
우리 구원은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따른 행실에 관한 문제를 말할 것이다.
행실이 그 믿음을 증거하는 사실이 있다.
오늘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믿는 자는 자동적으로 행실이 거룩할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 충분한 믿음의 특성이 있을 것이다.
자랑하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자.
우리 서로 달려갈 때, 서로 지켜야 할 의무와 임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자랑하므로, 원수에게 꼬리잡히지 말게 하라.
교회가 어려울 때, 어려움을 주는 것은 자랑하기 때문이다.
지옥 자식을 살려주셨으니, 오직 영광만 돌릴 것입니다.
이 부족하고, 벌레같은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을 것이 있다면, 나를 받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기쁨을 얻으시기 바란다.
오늘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통해 구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는 힘이 여기 있사오니, 나를 끝까지 인도하소서.
내 속에서 원수가 방해하지 않도록, 믿음의 영향력이 있게 하시고, 내 모든 인생이 내 자랑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소서.
나의 깨짐과 부서짐으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소서.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40 멀리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써 가까이 부르심(231001) (0) | 2023.10.01 |
---|---|
No39 선한 삶을 위해 구원하심(230924) (0) | 2023.09.24 |
No37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심(230910) (1) | 2023.09.10 |
No36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심(230903) (0) | 2023.09.03 |
No35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230827) (1) | 2023.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