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2주일 [술 취하지 할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사는 것은, 성령충만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또 하나님의사랑받은 자로서 살아가며 사는 삶을 살면, 인간이 가진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충만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요, 지혜로 걷때문이고,
거룩한 삶을 절대 옳게 갈 수 없다.
방탕은 술에 취하는 길이니 방탕하지 말라 했다.
방탕은 인생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패망하는 것을 말한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망하는 과정을 가지고 허랑방탕한 생활이라고 하였다.
눅15: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어떻게 보면, 이방인을 이루는 삶은 방탕으로 이어지는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술취함과 성령을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술취함과 성령충만은 어떤 면에서 유사한 면은 있지만, 본질은 실제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술취한 사람은 술의 힘에 자신을 맡기고 행동한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힘에 자신을 맡기고 행동한다.
자기를 맡긴다는 부분에서는 비슷하다.
굉장히 강력한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부분에서는 비슷한데, 술취함은 방탕함을 가져오고, 성령충만은 거룩한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앞에서 나눈 말씀을 볼 때, 빛과 어둠, 지혜와 미련함, 역시 술취함과 성령충만함도 같은 형태의 대조다.
[기쁨과 행복을 찾아 해매는 사람들]
이 세상은 술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첫째 행복감을 가지려고 술을 마신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마신다.
이것은 슬픔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효과가 있다.
기쁨과 행복을 어떻하든 가지려고 마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감을 갖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그 동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수단이 문제가 있다.
술을 마셔서, 행복해지겠다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
술을 마시고, 잠시 행복할 수 있지만, 이것은 잠깐만 지속되는 것이고, 참 행복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치루는 댓가는 대단히 많다.
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더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아주 임시방편이다.
술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삶의 괴로움은 오히려 술 때문에 더 많은 짐을 지게 된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참 기쁨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에서 온다.
사람은 기쁨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시16:8,9,11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이 내게 함꼐 하시므로, 비로소 내 기쁨이 채워진다.
물론 충분한 이유가 주어진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한다.
결국 다윗은 위로가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에게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일시적인 느낌이 아니고, 주님도 제자들에게 주시려는 기쁨이다.
요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하려 함이니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이다.
그냥 잠깐 즐거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주님이 갖고 있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기뻐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복음은 그들에게 결국 기쁨을 주는 도구가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복 중의 하나다. 복음이 가져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행복을 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자주 추구하는 술취함으로 얻으려는 임시적이고 거짓인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서운 파괴자 : 술취함]
성경은 술취함에 대해서 항상 정죄하고 있다.
술취하는 것은 사회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많은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된다.
또한 알콜 의존성은 술이 가져오는 것인데, 이것도 사람의 행복을 오히려 해치는 주범이 된다.
사람의 건강, 면역체계도 무너뜨린다.
인간이 쉽게 알콜을 의존하게 되는 것은 무섭다.
구약성경의 많은 사건들이 술과 관련되어 있다.
술을 많이 마시므로, 일어나는 부도덕, 악, 반란등이 많다.
잠4:17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성경은 술취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폭력은 술취함과 동반관계에 있다.
구약도 신약도 술취함을 굉장히 강력히 정죄하고 있다.
술취함은 재앙을 불러올 뿐 아니라, 재앙자체에 속한 요소다.
잠23:19-21
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20.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에서는 거듭 술취함에 대해서 경게하고 있다.
술취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자기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갖게 한다.
그래서, 술취함은 스스로 조롱당하는 것이다.
자기 두뇌가 순간적으로 기능을 상실하여, 자기가 실제보다 행복하게 느껴지고, 실제보다 더 나은자로 오해하게 만든다. 이 행복감이 지속되는 동안, 실제로는 술이 그 사람을 망하게 한다.
그리고, 술취함은 귀신들에게 취약하게 만든다.
그런데, 잠시의 기쁨을 위해, 술을 마시다가 고통당하고,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지만, 반복된다.
알콜은 또한 죄를 가져오는 강력한 잠재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께 맡겨져야 할 우리가 죄의 무서운 잠재성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알콜은 파괴하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
정신을 파괴하고, 사람의 감정을 나쁘게 만든다.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어 간다.
또, 육체적으로 대단히 나쁘고, 파괴성은 전 사회에 분명히 나타난다.
폭력사건, 살인사건을 보면, 알콜이 배경이 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거의 반 이상이 알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또, 교통사고, 정신질환, 질병도 가져온다.
술에 의존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다.
[고대 이방 종교의식에서 술취함]
에베소서에 이 부분을 쓴 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처한 환경 때문이다.
술취함은 에베소 교인에게 익숙하다.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러나, 어느새 그리스도를 만나고, 단절시켰다.
술취함과 우상숭배는 항상 같이 움직였다.
우상숭배 자리에 술취함은 필수요소였다. 거기에는 굉장히 문란한 행위들이 담겨 있었다.
에베소 뿐 아니라, 극동지방, 로마 문화권에서 유행된 것은 신비를 추구하는 종교의 영향력이었다.
당시 헬라종교는 신비한 체험을 핵심으로 두고 있다.
신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접근 방법을 갖고 있다.
이 체험의 최고 방법은 황홀감을 갖고 붕떠서, 신들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신적인 지식을 알아내고, 진리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 종교의식의 참여자들은 감정적 고조, 황홀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술을 진탕 마시고, 광적인 춤을 추고, 난잡한 행위를 하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이러면, 신과 접촉할 준비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신전에서 제사할 때, 술에 취하고, 광란의 퇴폐행위를 하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것이 우상종교의 예배의식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건전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헬라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제우스의 아들 중 하나인데, 디오니소스는 인류의 통치자다.
디오니소스는 로마신화에서는 바쿠스로 알려져 있다.
이천년동안 난잡한 술파티 문화는 바쿠스라는 이름을 들어 표현했다.
지금도 그 단어는 쓰고 있다.
이런 신을 믿는 것 자체가 벌써 난잡함이 필수 요소다.
이것이 에베소 교인에게 익숙한 문화였다.
이것은 단지 에베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고린도 지방도 마찬가지였다.
고전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본문에서는 단지 술취함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한 영적 문제를 가르키고 있다.
난잡한 술취함 문화는 이방종교의 예배의식과 연결된다.
로마시대 배경의 영화를 보면, 그냥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니라, 술취함을 통해 음탕함을 불러오고, 그러므로 죄인지도 모르고, 죄에 더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좋은 것으로 알고 빠져들었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망하게 된다.
이것은 원수 마귀의 영적 음모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을 고려하여, 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 수단으로 사용했던 술취함은 일반 삶속에서도 같은 목적으로 침투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감흥을 술을 통해 이루려고 있던 이방종교의 시스템을 의식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에게는 긴급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천국과 지옥의 문제다.
너희는 성령충만으로 참 영적 행복과 즐거움을 구해야 한다.
[알콜 없는 포도주]
사람들은 술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정당하게 표현하고 싶어한다.
신자임에도 괜찮다고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성경에 술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당시 사용했던 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성경에 독주라고 나와있는 부분도 있다. 알콜 함량이 많은 술이다.
새술은 과즙을 짜다보니, 자연발효가 된 상태다.
이것에 물을 많이 타서 먹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포도주는 히브리어로 야인(יָיִן)헬라어로는 오이노스(οἶνος)라고 한다.
여기 용도는 음료다.
이 음료는 포도즙을 끓여서, 농축시켜서 시럽처럼 만들고, 물에 타서 먹는 것이다.
오랜 저장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래서, 이 음료는 발효가 더 이상 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흔한 형태의 음료다.
그래서, 이것을 빵에 발라먹기도 했다.
당시 로마, 헬라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방법이다. 이것은 취하지 않는다.
고대문헌을 보면, 취하지 않는 포도주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옛날 사람도 술을 마시는 것을 야만스럽게 보았다.
이 음료는 알콜 성분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조금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술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대단히 깨끗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특히 깨끗한 물은 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을 저장하려면, 불가피하게 포도주로 만들어야 했다.
[술취하는 어둠의 때는 이미 끝났다]
술취함은 성경 어디에도 아름답게 표현되지 않는다.
눅12: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악한 청지기에 대해 술을 먹는 자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선하게 지은 자로서 스스로 망칠 수 없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살전5:6-8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고전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성령의 임하심의 위력]
성경에서 포도주를 마셨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는 것은 남도 죄로 끌어들일 수 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위의 구절에서 오직은 대신이라는 의미다.
술취함 대신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왜 바울은 그런 말을 했을까.
바울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을 너무 크게 느꼈다.
오순절 때 바울은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교회도 핍박하기 전이었다.
그 때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초라했고, 위협요소도 없었다.
그런데, 오순절 이후, 너무나 변했다. 교회의 큰 성장, 패기, 영향력이 엄청났다.
그래서, 핍박을 시작했다.
오순절 때, 엄청 열광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술취했다고 말했다.
자기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신비종교 행위로 보고 있던 것이다.
겉모습은 비슷하다.
그러나, 이것은 술취함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람의 영에게 충만한 은혜가 임할 때, 기뻐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술취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내용은 술취함과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완전히 어리석고, 어두움이고, 하나는 지혜 있는 것이고, 빛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을 행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이 온유할 수 있는가, 겸손할 수 있는가.
성령이 능을 부어주시지 않는데, 연합할 수 있는가.
세상과 구별할 수 있는가. 빛으로 살 수 있는가. 지혜로 살 수 있는가.
성령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옛날에는 모세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능력이 임했다.
출35:31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역사에서 유명한 주의 종들, 특별히 택하신 자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오순절 때는 교회의 모든 신자에게 동시에 성령충만이 임했다.
예수께서 이것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다.
요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래서, 오순절 사건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오시는데,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이 부분이 다르다.
옛날처럼 일부 종에게 오셨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안에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신자들안에 계시므로, 예수께서 조금전 약속하신 것 대부분 성취되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래서, 성령을 약속하신 성령이라고 한다.
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은 예수의 약속을 성취되게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맹세 자체다.
또한 보증이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할 것을 보증하신다.
예수가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을 보증하신다.
또, 예수 자신의 평안을 갖게 될 것을 보증하신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그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을 것을 보증하신다.
그리고, 확신하게 하신다. 곧 의심이 사라지게 한다.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리스도와 아버지가 하나이듯, 우리도 하나됨을 확신케 하신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또한 성령은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방언할 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도 자체를 그가 연결하신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는 분은 아멘하라.
우리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알고 있다면, 기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라는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내 능이 아니라, 하늘의 능력으로 일하는 기쁨이 있을 것이고, 이제 내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으신다는 것을 아는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요16:19-24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혜 없는 자처럼 행하지 말고, 성령충만으로 걷는 자 되기 바란다.
성령이 함께 하시므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기 바란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5 내 안에 주님의 인격적 임재를 의식함(250126) (0) | 2025.01.26 |
---|---|
No4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250119) (0) | 2025.01.19 |
No2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250105) (1) | 2025.01.05 |
No1 복 있는 삶과 긍휼의 능력(신년감사예배250101) (4) | 2025.01.01 |
은총의 가정(송구영신241231) (1) | 202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