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7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250209)

lks8284 2025. 2. 9. 17:45

250209주일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자들이다.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은 성령충만해지면, 가장 우선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다.

성령충만한 자에게 가장 처음 나타나는 결과는 교회가 서로 화답하며, 주께 찬양하는 것이고, 또한 범사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는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자의 마음에 감사함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정말 감사하는 자들인지 궁금하다.

아닐지도 모른다.

 

[감사에 대한 세가지 태도]

 

보통 우리가 감사의 문제를 대할 때, 크게 세가지 정도의 다른 태도를 볼 수 있다.

 

첫째, 감사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가진 것은 자기들에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더 못 가져서 아쉬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런 사람이 성경에도 있다.

부유한 농부는 자기 사업이 너무 잘되어, 계속 번창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사업이 번창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창고에 더 많이 쌓아둘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아무런 중요성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받은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일텐데, 하나님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자기 능력으로 자기 사업을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실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없다.

이런 것은 절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에게 오늘밤 네 영혼을 가져가면, 네가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물으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다. 간결하면서, 그 뜻은 분명하다.

너는 네 소유를 가질 자격이 없다.

여기서는 그의 목숨을 가져가신다.

사실 그 농부가 풍성한 여유를 누린 것은 자신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주셨다가, 받은 자가 감사하지 않으므로, 다시 가져가시게 된다.

많은 찬양에서도 주셨다가 다시 가져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께 대해 감사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감사 필요를 못느끼는 것은 그냥 불신앙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신론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가장 많은 경우다.

 

둘째, 위선적인 감사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바리새인과 세리 이야기가 있다.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은 사람들의 시각에 아주 의로운 사람이고, 세리는 아주 악한 자다.

바리새인은 역시 의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따로 기도한다고 되어있다.

따로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라는 말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운운하며, 기도하는 모양은 갖추었지만, 사실 감사는 자신에게 하고 있다.

이 감사는 자기를 위해 한 것이고,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며 감사하다고 했지만, 진정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경건하게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나 봐라. 나 의롭다. 자기가 자기 의로움을 즐기고 있다.

누가 그 기도 소리를 듣는다면, 나 의롭다고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는 진정 하나님께 감사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가식이다.

아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든 많든 이와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감사하다고 기도하지만, 말로만 감사할 뿐, 현실에서는 진실로 감사하고 있지 않다.

위선적인 것은 우리가 진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셋째, 참으로 감사하는 경우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만났던 열명의 문둥병자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열명이 모두 나았지만, 그중에 주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한 자는 오직 한명 뿐이었다.

자기가 깨끗함을 받은 것에 대해 감격하여, 일부러 돌아와서 감사했다.

그는 하필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경멸받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배반한 자로 굉장히 멸시받았는데, 그가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

그의 감사는 진정한 것이다.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이 동등하게 고침을 받았지만, 그들은 혜택을 받은 다음에, 더 이상 아쉽지 않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는데도, 아쉬움이 해결되니까, 감사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과분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은 자기 혜택을 위해, 주님께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 감사함의 의미다.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성령충만한 자들이 마땅히 드려야 하는 거룩한 제사물이다.

 

[항상 감사]

 

본문은 감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감사하는가.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어느 때 감사해야 할까. 항상.

항상은 시간이 흐르는 내내 감사하는 것이다.

어느 때는 감사하고, 어느 때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항상 감사는 하나님이 항상 인도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요즘은 통제라는 말은 되게 싫어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통제는 너그럽고, 돌보시는 인도를 말한다.

하나님이 항상 내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나오게 된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항상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절하는 것이다.

아니면, 믿지 않으니까, 그런 사실을 아예 머리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하는데, 어려운 일이 닥칠 때는 감사치 않는다.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을 항상 통제하고, 인도하시는 은혜로운 사역 자체가 그 시간에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 될 때 감사]

 

감사의 여러 수준이 있다.

가장 낮은 급은 일이 잘 될 때 감사하는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도 감사할 것 같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잘됐을 때 감사한다. 어려운 일이 극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아팠다가 살아났을 때 감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다.

특별히 신자의 영적 성숙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다가올 축복의 기대 속에 감사]

 

이보다 수준 높은 것은 앞으로 닥칠 승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앞의 것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있을 일을 위해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은 반드시 믿음을 요구한다.

이것은 믿음이 있고,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 하고, 소망이 있어야 한다.

믿음과 소망은 서로 보완관계가 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사람이 믿음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기대하며 감사,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면서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집에 오셨는데, 나사로는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다.

예수님은 아직 나사로가 살아나기전에, 아버지께서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한다.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자기에게 승리가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감사한다.

이것이 앞을 내다보는 믿음이다.

믿는 자는 자기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감사할 수 있다.

믿는 자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감사드린다.

이런 경우 왜 감사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당장 죽어서, 자기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가 족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 불행과 슬픔을 당했어도, 다 지나가고, 언젠가 영광의 날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부활하여 그분을 뵐 것이다.

그날에 대한 기대로 나는 마음을 모으고 있다. 이것이 믿음이다.

 

유다가 모압, 암몬의 공격을 받으려고 할 때, 그들은 군사력이 유다보다 훨씬 셌다.

그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

그 때, 유다왕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공포했다.

 

대하20:12, 21

12.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이 어려움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들로 군사를 이끌고 가며, 군사 앞에 찬양대를 세웠다.

군대 앞에 찬양대가 주께 감사하는 찬양을 한다.

이들이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숨겨둔 복병이 나와서, 그 적들을 쳤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들은 승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승리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데, 그 감사의 내용대로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에게 닥칠 어떤 일이 상황적으로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도, 주께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먼저 감사하는 자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감사하지 않은 자에게 승리가 있을까.

믿음이 없는 자, 바라고 있지 않은 자에게 승리가 있을까.

먼저 감사드리는 자세는 믿는 자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천년간 자기들을 박해하는 세상을 버텨온 비밀이다.

 

[여러움과 고난 중에 감사]

 

, 완전히 절망속에 있을 때, 드리는 감사가 있다.

내가 실패하는 것으로 완전히 압도당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잡혀갔을 때, 왕이 일정기간 자기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는 자를 다 처벌하겠다고 했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엄청난 소식을 듣고도, 다니엘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 법령이 승인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면, 그 인생은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자기가 처한 상황도 상황이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상황이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내 상황이 어떻든 그분은 영광받으셔야 한다.

요나의 경우도 그렇다.

요나는 다시스에 가서 전도하라고 명령을 받았다.

요나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기가 싫어서, 도망갔다가 그 형벌로 물고기의 먹이로 던져졌다.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는 물고기 뱃속이지만, 자기를 살려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과거에 자기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식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감사로 기도를 마쳤다.

그는 자기를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끝이더라도, 그동안 받은 사랑에 족하다.

요나는 자기가 처한 입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해 감사받으셔야 한다고 한다.

 

바울은 그의 말년에 로마의 감옥에 갇혔다.

그가 처형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1:3,6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다. 마지막날 주님 오실 때, 그를 맞을 수 있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바울은 자기가 처한 상황은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사람들을 통해, 자기의 일을 이루셔야 하고, 영광받으셔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최고의 포인트다.

이런 경우 감사할까, 말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려움에도 감사하다고 자기 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려움에도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은 마땅히 감사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 맞다.

 

[무엇에 대해 감사?]

 

범사에 감사.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왜 감사할까.

나쁜 것은 빼고, 좋은 것만 감사하면 안될까.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자각에 근거하는 것이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 절망하여 쓰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님은 최후에 선으로 결론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다.

축복이 있을 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과 시험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실 것이다.

삶이 잘 안될 때, 속상하고, 어려워도, 성령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자기 건강이 엄청 나빠도 감사.

영적 신자는 심지어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감사한다.

욥의 경우가 그렇다.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은 자기 자녀를 한날에 모두 잃었다.

그런데, 그는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받으시라고 했다.

영적인 신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감사로 가능하다.

좋은 일에 대해서만 감사하고, 다른 일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고후9:12,15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감사가 충만하다. 닥쳐진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한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 결국에는 우리의 궁극적인 축복을 위해 나타날 것이다.

무엇이든 결국 하나님이 나의 삶을 위해, 가장 최상의 것을 주시기 위한 과정이다.

이렇게 은혜로우시고, 지혜로우시고, 사랑많으시고, 긍휼이 많으신 그의 행사를 드러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감사?]

 

우리는 감사할 때, 예수 이름 안에서 감사한다.

찬양할 때, 단순히 우리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예수께서 찬양하시고, 똑같이 우리가 감사할 때, 예수께서 우리안에서 아버지께 감사하신다.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이 선하게 결론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모든 것은 선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모든 것이 선하게 결론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이유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안에 품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 영광이 온전한 길로 가려면, 우리가 완전히 예수께 편입된 상태로 가려면, 지금의 일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하나님 오른편에서 그를 위해 중재해주는 그리스도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약속, 그리스도께서 주신 많은 언약도 갖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없다.

그에게는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근시안적인 것으로만 보고,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 지혜롭고, 은혜가 충만하신 일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감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후사가 되어, 그분의 영광속에 들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리스도가 있고, 그를 우리 속에 모시고 있다.

절대로 버려지지 않을 자들.

예수님은 항상 감사를 드리셨다.

이 감사는 신기하다.

주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 이전에는 유대인의 유월절 만찬이었던 것을 거룩한 주의 만찬으로 만드시고, 그 안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셨다.

십자가 처형을 바로 몇시간 앞두고, 성만찬을 제정하셨다.

떡은 잠시후 너희를 위해 죽는 나의 육신이다.

나는 너희를 위해 죽고, 너희를 살릴 것이다. 내 나라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을 축하하신다.

주님은 조롱당하시고, 많은 모욕을 당하시고, 거부당하시고, 침뱉음 당하시고, 참람함을 다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다.

그것이 그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데, 그는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셨다.

그는 당연히 영광받으셔야 하는데, 수모당하셨고, 사랑받으셔야 하는데, 미움받으셨고, 부유하셔야 하는데, 가난하셨고, 거룩하신 분인데,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하셨다.

이것은 그가 자기를 비웠다는 것을 말한다.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가 자신을 비우셨기 때문에, 그는 오늘 우리를 채우실 수 있다.

그가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가 포기하고, 비웠던 것들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수모당하고, 모든 고난을 당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영광을 이미 확보했다.

우리는 진짜 미움받아야 합당하지만, 사랑받았다.

우리는 진짜 불명예스러운데, 하나님께 받은 명예가 충만하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영원한 부유를 받았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버림으로써, 오늘 우리의 행복을 확보하고, 내일을 위한 축복을 준비하셨다.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는 이제부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모든 일의 중보자시다.

그러므로,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이다.

그의 중재로 인해서.

그가 원래 모든 복을 받으셔야하는데, 그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우리의 감사의 이유가 그리스도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왜 성령충만한 자로 있어야 하는가.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신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을 수 없다.

주님은 우리의 중보자시고, 성령도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시다.

 

[누구에게 감사?]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한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온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진정한 감사를 받을 분은 아버지시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각양 은사가 그분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주셨다.

 

그런데, 난 하나님만 사랑하고, 사람은 믿지 않는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실 때,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축복의 통로로 삼고 베푸신다.

그러므로,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받으라고 주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귀하고 복된 선물은 사람을 통해서 온다.

주의 종을 통해서 오고, 성도를 통해서 오고, 전혀 뜻하지 않던 내가 미워하던 사람에게서 오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내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이들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구원받지 못한 자의 표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자.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가 교회다. 서로 도우며 세워진다.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안에서 감사함이 넘쳐야 한다.

진심으로 영광돌리는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그의 궁전에 오직 감사함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자.

서로 화답하며, 노래하고 찬송하며, 범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성락인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