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시편 73:1~20)
2025년 4월 6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시편 73:1~20)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때 온갖 애를 씁니다. 연보도 많이 하고, 섬기기 위해서 시간도 많이 쓰고, 에너지도 많이 쓰지요. 그들이 자기 생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밥벌이를 하면서도 교회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할애합니다. 그렇게 수년, 때로는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에 전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주의 교회를 위해 자신이 능히 취할 수 있는 것조차 기꺼이 내려놓습니다. 자신을 위한 요구는 스스로 제한하고, 희생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하겠지.’ 하는 생각합니다.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놓고 사용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땀을, 눈물을 드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가운데 그저 앉아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조금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두 경우 모두 헌금은 합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양쪽이 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무신론자이거나, 하나님 자체를 의심하고 있거나. 이런 사람들은 ‘혹시 지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옥은 피하자’는 식으로, 말하자면 신앙의 상·중·하 중에 중하 정도라도 턱걸이로 붙어 있으려는 심정으로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식하게 보는 경우입니다. 본인도 모르게, 고민조차 하지 않고 기초적인 생각으로 ‘저 사람들은 참 미련하다, 자기 밥그릇도 못 찾는다’고 여기는 겁니다. ‘나처럼 잽싸게 할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위나 직장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아, 자주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 속에 계시다면, 하나님의 종들을 하나님 자신의 생각으로 사용하신다면, 안타깝게도 그 사람들, 하나님께 분명히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좋은 직업과 좋은 급여를 받고 있으면서, 교회에서는 단 한 치의 손해도 입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교회에서 간판처럼 존경만 받고, 우아한 척만 하며, 자기직장에 조금의 스크래치도 나지 않게 하려고만 하죠.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교회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직종의 몇몇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떠났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회에서 존경받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가 어려울 때 돕기는커녕, 이제는 오히려 교회를 박멸하려는 데 자기의 사회적 지위와 지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 어떤 사람은 제가 진심으로 축복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했고, 그들이 사회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를 도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을 때나, 예상치 못한 특별한 상황이 닥쳤을 때 교회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필요하거든요. 실제로 다른 교회들을 보면 그런 도움을 주는 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주님의 제자들 중에는 예루살렘 고위 공직자도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에도 주님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럽지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 안에도 사회적인 위치가 있는 사람도 좀 있어야 합니다. 사회 각층의 사람들이 다 있어야 합니다. 당장은 교회가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들과 싸우며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어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몇 사람조차 교회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락교회’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만약 유명한 교회였다면 자신이 어느 교회 다닌다고 말하며 자랑했을 텐데, 성락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해봤자 괜히 마음만 불편할 뿐이지만, 문제는 저는 그 사람을 위해 정말 축복해 왔다는 점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을 주께서 역사해 주옵소서.” 그는 실제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저는 그에게 “교회에서 사용되십시오.” 하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시간에 쓰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높은 지위에 오르자, 오히려 그 앞에 우리 교회는 더 낮아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그가 높아져서 우리 교회를 돕게 되길 바랐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섬기게 되면 진정한 옥석이 가려지는 것 같습니다. 참된 양과 염소가 구분되는 경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에서 전혀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 높은 지위가 우리 교회에 먼지만큼의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늘의 것으로 그를 축복했습니다. 그것을 하찮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저 사람이 떠드는 소리에 불과했겠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하나님께 빌어 하늘을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것이 그 사람에게 작용하도록 말입니다.
외국에 살 때 전기 수리 같은 것을 업체에 요청하면 ‘출장비’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수리를 하든 못하든, 일단 부르면 돈을 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불렀다는 것은, 내가 하늘의 권위를 상관해서 하늘의 권위가 입혀진 일이기 때문에 그 여파는, 결과는 결국 자기에게 청구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정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을 볼 때 하늘을 부른다는 것은 대단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언약을 맺었고, 하나님과 약속을 맺었으며, 은혜로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예를 담보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언약 안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가볍게 여겨질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는데도 “그냥 넘어가자”고 하고, 죄인은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고 다니며, 오히려 선한 자가 괴로움을 당하고 법적으로 처벌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원래 그냥 그런 거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반드시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묻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 여러분과 히브리서 1장 8절의 말씀을 보려고 하는데, 이와 유사한 내용의 말씀이 그동안 여러 번 있었지만,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소개하려는 이유는 ‘하늘은 의의 법으로 다스려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은 공평합니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를 헬라어로 해석하면 '공평하다'는 표현은 종종 'just', 곧 ‘정의롭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공의, 공정, 정의
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불법을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반드시 해결하시는 것이 그 나라의 법입니다. 이 지상의 나라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눈앞에서도 진실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진실이라 하고, 어둠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둠이라 하며, 단 것을 쓰다 하고, 쓴 것을 달다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만, 하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내용이 살짝 암시된 말씀이 히브리서 1장 8절입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히브리서 1:8~9)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왕이 가지고 있는 권위, 법을 선포하고 다스리는 그 도구가 ‘공평한 홀’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평한 의’가 지배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관자,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께 많이 드리고, 주를 위해 사용되며, 착한 마음으로 “아이고, 그냥 갈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며 돕고, 위로하고, 감싸주는 일을 보게 됩니다. 피곤함에도 더 감싸주고 그렇게 합니다. 이런 걸 누가 알아줄까요? 세상은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도 그냥 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거의 20년 가까이 계속 묵상해 온 구절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단순히 이렇게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야, 예수 믿는 자들 다 잡아라!” “싫어! 난 예수님만 믿을래!” 그렇게 핍박을 이겨낸 자가 천국에 간다고, 이런 장면만 떠올리고 그 나머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신앙생활의 기반이 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우리의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손해 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다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이 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전혀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은 악을 계속 행하고, 거룩한 자는 계속 거룩하고, 더러운 자는 계속 더럽게 행동하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에도 나와 있고, 계시록에서도 최소 두 번 이상 반복되어 나옵니다. 결론적으로 “그래, 해봐. That’s it. 해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열심히 하고, 어떤 사람은 봉사를 열심히 하며,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교회를 돕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관장을 맡아 섬기지만, 실상은 교회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지위를 누리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어려운 중에도 교회를 위해 막대한 금액으로 헌신헌금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하나님께 의를 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때문에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다. 상 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그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엔 불공평한 게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뭘 해보려고 해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형편에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인생 내내 고생만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고, 누군가는 인생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 신앙도 힘들게 이어갑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더 힘든 길을 걷게 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역시 헌금도 해야 하고, 교회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임무는 교회 재정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물론 많은 이들과 함께 하지만요.
그럼으로써 자기에게 오는 손해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합니다. 교회에 너무 많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난 사회에서도 지위가 있으니까.’ 하면서 자기 지위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기관장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너 기관장 했잖아! 그때 했잖아!” 하시며 알아주실까요? 아닙니다. 심판의 날에는 오히려 마귀가 그 사실을 들추며 지옥에서 괴롭히고, 천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너 그때 기관장이었잖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그 자리에 세워줬잖아.”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헌금했다.” 그런데 그리고서 주님이 “과부님, 전 재산을 다 내셨네요. good luck!” 하고 그것으로 그냥 끝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기억하십니다.
이 땅에서는 시작부터 모든 것이 불공평합니다. 누구는 잘난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형편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세상엔 공평한 게 별로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뭘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되고, 능력도 부족하고, 여건도 안 따라주고, 부모조차도 고약한 분을 만나서 고생을 정말 많이 하며 인생을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래도 나는 주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부모도 착하고 너그럽고, 살림도 안정되어 있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교도 다니고, 사회생활도 잘 풀립니다. 그런 사람은 눈을 내리깔고, 누릴 것 누리며 세상적으로도 무난하게, 때로는 아주 잘나갑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놔두고, 하나님 믿음으로 구원받는 건 다 똑같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동일하게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보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매사에,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기억하시고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너에게는 좋은 것을 많이 주었는데, 그만큼 사용하지 못했구나. 내가 너에게 기회를 더 주었는데, 너는 이렇게 했구나.”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좋은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교회를 잘 섬겼으니 많은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의 상은 작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죄송합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피곤에 쪄들어 30년, 5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하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내가 아플 때 돌아보았고, 내가 옥에 갇혔을 때와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내가 외로울 때 함께해 주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네가 나와 함께 있었느니라. 너는 내 나라를 상속받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럼 저도 진짜 주님이 필요하실 때 도우면 되겠네요.”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니다. 내가 정말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던 그때, 너는 나를 외면했느니라.” “어?! 저 교회에서 기관장도 하고 별거 다 했는데요?” 하지만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받은 대로 거기에 상응하여 보상을 받습니다. 그가 받은 것을 이 땅에서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고려하시는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주께 더 드리고, 힘겹더라도 믿음으로 감당하라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연보할지어다. 지금은 시간 없고 괴로울지라도 섬길지어다. 지금은 너의 가정이 무너질지라도 주의 교회를 세워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갚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네가 행한 대로 내가 갚아주리라.”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했다면, 너에게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를 위하여 네가 네 믿음을 드린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믿음의 분량으로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모름지기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잘 믿고, 반대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큰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믿음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땅,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지금 당장은 고난스럽고 힘들지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땅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매도 맞고, 강도도 당하고, 친족에게 배신도 당하고, 죽은 줄 알았으나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기어서라도 살아남은 그는, 주님께 맡겨진 임무를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가 어디서 보상을 얻으려 했겠습니까? 주의 나라에 이를 때 보상받으려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왜 그 고난을 감수하며 그런 삶을 살았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믿음 안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분량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없어도 섬기고, 손해 봐도 주를 사랑하며, 불공평해도 참고 견디는 이유는,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으로도 불리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가 작다든지, 인물이 수려하지 않다든지. 반면 어떤 사람은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뭘 해도 잘 나갑니다.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향기가 나는 듯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기만 하는데도 “비키세요, 아저씨!” 하며 차가운 시선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갚아 주실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큼,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견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2절 이하의 말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다 보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주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게 됩니다. 빛을 받은 이후 고난의 큰 싸움에 참으며,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게 되는 것이죠.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했습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난 후로,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위해, 내 죄를 대신 지신 그 주님을 위해, 우리는 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혹 비방과 환난으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그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들을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10:33-35)
할렐루야!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받는 보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국 천국에서 큰 영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영광이 없고 천국에서도 영광이 얻을 것인지, 이 땅에서 영광이 많고 하늘에서 영광이 없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진실한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 사랑을 쏟고, 누가 알아주지 않고, 세상의 법으로는 계산이 나오지 않는, 내가 죽고 주는 사는 자 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란 이처럼 조그마한 예수, 조그마한 그리스도도들이 십자가에 오르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태로 인해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를 떠나간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어려움을 주었고, 그들끼리 다시 만나기도 한다는데, 정말 그들 안에 참된 신앙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영원한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가르기까지 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상하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의와 불의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믿지 않았던 것이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까지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행동과 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가자. 하나님도 못 보시겠지. 에라 모르겠다!” 애매한 부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 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하실 것이 없다면 천국에 있는 우리의 소망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예수를 만나게 하시고, 성령께 순종하게 하신 그 도우심의 사랑, 그 결정이 맺게 하신 열매가 바로 천국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반응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믿음을 배당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최고의 영광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또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려는 시도는 이제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나를 위해 죽으신 그 희생, 자기를 사랑하신 그 사랑하심을 자기의 자원으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나라의 꿈을 향해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한 200년쯤 버텨보세요. 혹시 200살까지 사실 분이라면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50년도 어렵겠다’ 싶은 분은, 그 남은 세월 동안만이라도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와 싸우지 말자! 자기 목자를 핍박하지 말자!
이 세상은 많이 오염되어 있어 어지럽습니다. 거짓이 너무 많습니다. 이 세상을 믿지 마십시오. 세상을 믿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이렇게 고백합시다. “지금은 없어도 저 나라에서는 있으리라! 지금은 부족해도 저 나라에서는 많으리라!”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의 약속, 그 풍요함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며, 주께서 우리에게 맹세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명예로 내게 맹세하신 그 약속, 우리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기회주의적으로 살지 않겠습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버리겠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있는 거짓과 기회주의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그 모든 것을 버리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속에 거하여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옵소서.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우리 하나님의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시고 또한 정확한 판단을 가지신 분인 것을 잘 깨닫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께서 소개하신 또 약속하신 또 들어가도록 격려해 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저 영원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공평한 것, 모든 것이 갚아지는, 모든 서러움과 모든 아픔과 모든 눈물이 씻겨지는 귀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임을 모두 알게 하여 주시옵시고,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믿음을 다하여 주를 기쁘게 하는 우리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헌신하듯이 우리가 힘나는 대로 주께 헌신하는 우리의 삶 다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없을지라도 괴로워하지 아니하고, 부족할지라도 눈물 흘리지 않는 우리가 되고, 괴롭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50406 공평하신 하나님(시편 73:1~20)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태초에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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