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 영원한 주(베드로후서 3:8~14)
2025년 4월 20일 성락교회 부활절 감사음악예배(주일연합) 설교: 김성현 감독
(베드로후서 3:8~14)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부활 감사 예배’로 주께 영광을 돌리며 함께 모인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 위에서 중요한 한 가지 일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 속 요소요소마다 담겨 있는 이 모든 귀중한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가 소중히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결국 도달하게 하실 그날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이와 같은 요소들, 즉 하나님 나라의 성품과 특성들을 지니고 가서 함께 누리며, 하나님 나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고난을 되새기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추억이나 감상이 아니라, 결국 우리 인생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함께 일하시며,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 예수님과 함께 훈련받고 지켜지며, 그분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도대체 그날이 언제 오는 거지?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텐데. 세상은 지겹고 피곤한데, 교회 다니는 것도 힘들고, 예수 믿는 것도 어렵고, 세상 살아가는 것도 고단한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인생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짧은 여정입니다. 이 우주의 시간은 하나님께는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집중하여 이루시며, 시작하신 일을 신속하게 이루어 가시려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것은 마치 나에게 몸이 있는데 내 혼이 그 안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단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드리는 설명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영,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를 일컬어 ‘성령 충만’이라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하느냐? 먼저 이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 세상이 때가 차서 결국 멸망하고 지옥에 던져지게 될 텐데,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불쌍한 자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인간들, 곧 하나님 백성들이 이 땅에 많았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고 견디며 믿음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마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 ‘그리스도’라는 직분을 지니고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보냄 받은 자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는 아직 어렸지만 이미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있다! 죽여라!” 하는 명령이 내려져, 많은 어린아이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도망 다니셔야 했고,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 사이에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셨는데도 말입니다. 그가 성장하시는 동안에도, 그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세상은 매우 거칩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이 가득합니다.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거짓을 입에 담고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세상과 함께 썩어 있는 셈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많이 타락했습니다. 거짓말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악의적인 거짓말로 타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눈물 흘리게 하고, 슬픔에 빠뜨리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행동은 너무나 악한 일입니다.
이 세상엔 모두가 조금씩은 악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악한 일들도 많습니다. 협박하고 겁박하여 옳지 않은 일을 강제로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만 챙기고 남에게는 전혀 관심 없이 차갑게 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점에 들어갔는데, “어서 오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뭘 사시려고요?” 하는데 마치 ‘안 살 거면 빨리 나가세요’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미움이 가득합니다. 어린아이조차 이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아, 원래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도 손님에게 “왜 들어왔어요?” 하는 식으로 말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 데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됨을 느끼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미움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움이라는 숲을 헤치며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어디를 봐도 미움이 많습니다. 미움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곧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미움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무자비함이 가득합니다. 얼마나 사납고 무자비한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또 무엇이 있냐면, 바로 탐욕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갖고 싶어지면, 그것을 얻기 위해 남을 파괴하고,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고 빼앗기까지 합니다.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죠.
물론 지금은 간단히 표현했지만, 사실 이런 악한 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결국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인해 교회를 공격하고, 선한 것들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세상이 매우 악해지다 보니 점점 더 사나워지고, 폭력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고,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며, 나이가 들수록 이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세상이 무섭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께서 직접 겪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며, 지옥에 떨어질 자들을 위해 “내가 저들이 받아야 할 값을 대신 치르겠다” 하시며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거짓 증거와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거짓을 가져와서 사실이라고 거짓말하고, 자신의 탐욕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해관계 때문에 예수님을 희생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마음으로 그분을 괴롭히고 학대하며 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결국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해치운 자가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세상은 자기들의 악함의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을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십자가에서 멸망당하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와 사망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사망을 끌어안고 죽으셨습니다. 죄도, 사망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었고, 주님은 그 자리에서 죄를 오히려 멸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님은 우리같이 희망 없는 자들에게, 거짓말하고, 남을 협박하고, 미워하고, 무자비하고, 탐욕과 욕심에 물들고, 열등감과 두려움, 불안 속에 치이며 살던 자들에게, 긴장감 속에 늘 치고받으며 차가운 세상에서, 의미 없는 세상에서, 사랑 없고 온기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의미한 인생을 십자가에서 멸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처음부터 지니고 계셨던 그것, 세상과 맞지 않아 결국 죽임을 당하게 했던 그것, 그것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만약 예수께서 세상의 방식에 맞추어 행동하셨다면, 죽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착하셨고, 사랑하셨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인자하셨습니다.
당신은 아프더라도 남은 낫게 하셨고, 당신이 슬프더라도 남은 기쁘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거짓으로 자신을 챙기지만, 주님은 참된 평안과 진실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협박하여도 그는 오히려 격려와 위로를 주셨고,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위험이나 악한 세력, 협박이 와도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착하고, 거룩하고, 경건하며, 아름답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가지신 그 성품, 성령과 함께 나누셨던 그 성품을 끝까지 고수하셨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와는 맞지 않습니다. 결국 이 나라는 언젠가는 지옥에 던져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캘린더에서는 이 땅의, 우주의 멸망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순히 "우릴 구원해 주세요", "우리에게 축복을 주세요, 형통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신 주님, 나를 위해 끝까지 참고 고통을 감내하신 그 주님과 이제 나는 하나가 되어, 주님 안에 들어가 그분의 성품을 나누고, 그분의 생각을 나누고, 그분의 계획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어떠하든지 나는 주님과 함께 가겠다. 주님의 위대하고 거대한 계획 속에서, 그 프로그램 안에 나도 작은 부분이라도 동참하여 주님을 도와 드리겠다. 주님이 부르신다면,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만함으로, 거짓으로, 협박으로, 탐욕으로, 차가움으로, 미움으로, 교만으로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신실함으로, 선함으로, 인자함으로 해야 합니다. “아, 목사님 그러 거 필요 없어요. 주여! 불을 떨어뜨려 주옵소서!” 이런 식으로, 마치 신앙이 술 취한 사람처럼 소리 지르며 무언가를 던지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선하고 신령하며, 진실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에게 약점이 있고, 거짓된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후회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죄송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부터 평생 주님과 교제하며 연결되어, 주님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야 할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에서,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 역시 싸우는 자들입니다.
“주님, 저를 잘 살게 해주십시오. 제 인생 길 가는 동안, 제 인생을 도와주시고, 제 가족도 잘되게 해주십시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여, 당신의 나라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삶이 다 무너지고 갈기갈기 찢어졌어도, “나만 살려주십시오.”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시는 곳에 우리 모두가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을 우리는 이번 고난 주간 동안에 많이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너무 놀랐습니다. ‘이건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감동하신, 하늘의 백성들이 함께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고난 주간에요, 황 전도사님께서 교회의 꽃과 나무 장식을 맡아 섬기셨는데, 이분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시고, 전공하신 분입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이 일을 담당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회를 위해 고민하던 중, 누군가 버린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합니다. 이미 죽은 나무였고, 원래는 불태우거나 폐기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께서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드셔서 그 가지를 교회로 가져오셨습니다. ‘우리 교회 로비에 장식물로 사용해야겠다.’ 하면서.
그렇게 로비에 있는 ‘십자가의 벽’ 앞에 마른 가지를 끼워 넣었는데, 놀랍게도 하루가 지나고 나서 그 가지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송이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이분이 너무 놀라며 고백하시기를, “내가 수십 년간 이런 일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본다.” 하셨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부활절을 준비하는 그 시기에, 죽은 나무에서 꽃이 활짝 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립시다!
이 일은 마치 주님의 성궤 안에 있었던 모세의 지팡이에 꽃이 피었던 사건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매번 “마른 나무에 꽃이 피었다, 마른 나무에 꽃이 피었다, 마른 나무에 꽃이 피었다” 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위로의 표적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하시며 마음에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는 분들, 다시 한 번 감사의 박수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품으셨던 마음의 상처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나는 사랑했건만… 나는 사랑했건만.”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시고, 이 세상에서 지옥의 고통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 오르셔서,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우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힘을 내라! 너희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그날을 준비할지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때, 너희는 그 나라를 위해 준비할지어다! 이 모든 것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며, 모든 체질은 녹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비록 지금은 썩은 것 같은 이 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반드시 꽃이 피는 날이 올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이 확신과 격려에 대해 큰 박수로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락인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습니다. 세상 일이 아무리 여러 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시간을 빼앗고, 정신을 분주하게 하더라도, 우리의 중심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그가 부르실 때 그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부활의 권세 앞에 무릎 꿇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주님. 단지 잠시 동안 계시는 분이 아니라, 평생 섬기며 그 이후까지도 섬겨야 할 주님.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과 교제해 나가길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 모두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부활의 능력과 창조의 능력,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를 덮어주시며, 우리 앞에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들으며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성락인들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악한 사단의 뜻을 따라 사단의 풍속을 좇고, 뜻을 좇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자들로서 주께서 영원한 나라로 준비하시며 우리를 부르시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경건하고 또 흠 없고 점 없는 훌륭한 성락인으로 잘 준비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50421 우리 마음 속 영원한 주(베드로후서 3:8~14) 성락교회 부활절 감사음악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태초에 말씀이
'연합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심(연합250504) (0) | 2025.05.09 |
---|---|
거짓 비방의 죄(연합250427) (0) | 2025.05.01 |
슬픔의 사람(연합250413) (0) | 2025.04.18 |
공평하신 하나님(연합250406) (0) | 2025.04.09 |
자유와 책임(연합250330) (0) | 2025.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