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1고난주간 [날 위해 받으신 진노의 잔]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막14:32-42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노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을 통해 오늘 여기에 서 있다.
주님이 누리실 것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아픔을 겪고, 고난을 겪고,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마땅히 누릴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다.
그의 가장 귀한 것들, 그의 생명, 그의 행복, 그의 의, 그의 기쁨을 우리 안에 주셨다.
그것을 잘라서 나누어 갖지 않고, 주님이 가지셨던 것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우리가 육신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한계로 인해, 육신의 즐거움으로 한꺼번에 닥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작은 기다림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 지나간 후에, 우리는 주님이 준비하신 것으로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주님과 함께 영광의 영역에 들어온 자들이다.
하늘보좌에 앉기로 확정된 자들로 임시로 이 땅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자랑하고, 전하고, 그 의를 위해 싸워야 할 잠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자주 보았던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삶을 걱정하시고, 우리가 용기없음을 안타까워하시고, 우리의 두려워함을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가진 것이 없음을 함께 고민하시고, 육신의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넘어짐 속에 같이 아파하신다.
당시 기독교가 보전되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의 굳건함을 많이 강조했지만, 성경에서 주님의 성품을 보면 군림하는 신이 아니었고, 여러분과 나를 위해 사랑하셔서 진노의 잔을 대신 드시고, 저주의 운명을 대신 받으셨고, 나를 위해 아프시고, 고난받으신 사랑이 많은 분이다.
그는 친절하시고, 너그러우시고, 자상하시되, 우리의 삶을 모르시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감정, 아픔 다 아신다.
그는 우리의 길을 다 가셨다.
그는 백프로 사람이셨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다.
육신적인 특성 다 갖고 계셨다.
그는 성경에서 볼 때, 아픔, 괴로움, 심리적 압박, 마음의 고통을 많이 받으셨다.
진실로 그는 사람이셨고, 우리 마음을 아끼고, 생각하고, 기억해주시는 분이셨다.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확보해주셔서, 누구도 죄로 멸망하지 않게 하려고, 오늘도 우리를 지원하시고, 매시간 기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보이게 하려고 애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예수안에 사랑을 담아 보내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참 진실함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예수는 우리가 기대해야 할 모든 사랑을 다 갖고 계신다.
우리 각자의 슬픔과 서러움, 약함을 다 아신다.
그러면서도 격려해주신다. 그는 우리의 아픔을 일일히 다 겪으셨다.
우리의 메시야, 나의 그리스도, 우리 각인이 다 말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시요, 온 세상의 임금이시다.
그러나, 오늘 백프로 그가 우리 각인들의 마음의 주인이시고, 사랑이시고, 위로하시는 분이고, 이끄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위해 계신 분으로 봐도 마땅하다.
그는 인간을 부리거나, 업신여기거나, 권위가 떨어질까봐 염려하는 분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많아서, 하나님도 그런 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친절하고, 우리 마음을 잘 아시고, 이끄시는 분, 영원히 사랑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귀한 사람들이 있다.
가족들이 있고, 모두 엄마가 있다.
이 세상에서 엄마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분이다.
그러나 엄마는 오래 살 수 없다.
같이 인생을 겪고, 끊임없이 사랑하지만, 이 땅에 있을 동안만 우리 삶속에 맡겨주신 어머니일 뿐이다.
우리를 보전하는 일을 위해 맡겨진 주의 종들이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 사랑 중의 사랑, 긍휼함 중의 긍휼함, 인자함 중의 인자한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주신다.
그런데 그는 고통을 받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여서는 안될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나님께 구하여, 그의 도움을 간절히 갈망하는 것이 옳다.
주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셨다.
그 때는 유월절이었다.
그 이후에도 유월절이 있었지만, 사실상 그 날이 마지막 유월절이다.
인간의 유월절은 그날로 다 끝났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성찬의 나눔으로 대신하고 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내려놓으시고, 감싸주시고, 발을 씻겨주시고, 서로 사랑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시고, 아버지께 부탁하여 축복해주셨다.
제자들이 듣는 곳에서 확인하여서, 아버지에게서 보낸 분임을 확인시켜주고, 그는 내내 마음 아프셨다.
그를 따르던 자들이 떠났을 뿐 아니라, 삶의 시간이 하루도 남지 않은 시간 속에 여전히 남은 배반을 마음 아파하셨다.
제자 중 하나가 주님을 마음으로는 싫어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내통하여,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는 함께 있었다.
같이 있는 동안 아무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회계를 맡은 자로서, 사람들은 좋게 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늘 마음이 아프셨다.
나중에는 이제 가라 하고 내보내셨다.
그는 다시 올 때는 모든 거짓된 증오와 더러움을 다 갖고 와서 예수의 육신에 족쇄를 채웠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진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감람산 겟세마네로 가셨다.
거기는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에 있을 때, 거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밤에 자주 계셨던 곳이다.
산에서 밤을 샌 것이다.
거기서 기도하자고 하시고, 그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제자 세명을 데리고 더 나가서 기도하셨다.
그들의 증언으로 오늘 성경에 이 말씀이 있는 것이다.
기도하실 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고 했다.
막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이 모습은 다른 곳에서 주님의 강인한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주님이 너무 괴로워하셨다.
하나님이신 분이 그러하셔야 할까.
단어 자체가 너무 강력한 마음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견딜 수 없어서, 애를 쓰실만큼 너무 고통받으셨다.
그는 백프로 사람이셔서, 감각을 갖고 아프셨다.
마음도 지극히 아프신데, 사랑이 많으시니, 우리가 아픈 것보다 더 아프셨다.
그는 우리의 아픔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 다 알고 계시는 진짜 우리를 살리는 제사장이시다.
일일히 체감하시고, 자신의 것으로 함께 고통받으시면서, 나누시는 분이시다.
시험을 받을 때마다 그는 우리가 겪는 고난처럼 다 겪으셔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다만 그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라는 우리와 다른 점이 있을 뿐이다.
겟세마네 기도에 대해 우리는 제자들이 전한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온갖 사람들이 그를 배반할 것이고, 인간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세상적인 지위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다 버릴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정성을 다해 가르쳤던 제자들도 버릴 것이다.
베드로도 철저히 버릴 것이다.
자기를 섬겨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더러움으로 온갖 흉악한 범죄를 다 저지를 것이다.
그는 앞으로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모든 처벌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런 것도 사람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임박한 죽음, 인간의 괴로움을도 겪지만, 하나님과의 결별, 영적인 저주를 받아야 하는 괴로움도 있었다.
영원히 하나님과 계셨던 분이 진노의 잔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사망에 처해져야 한다.
육신이 죽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사망이다.
일반인도 죽으면 다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심판을 받는 죽음이다.
이 때, 그에게 닥친 고민은 마귀가 생각을 넣고 한 것이다.
십자가 지지마라. 육신이 얼마나 아플지 알아.
이런 식으로 예수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막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해달라고, 사람으로서의 연약한 면을 보이셨다.
제자들이 함께 있으면 그나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서서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앉으셨다가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
극도의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기도하신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단은 그에게 엄청 역사했을 것이다.
머리에 여러가지 아픔과 생각들이 함께 있었고, 주님은 오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운명의 기로에서 싸우셨던 것이다.
그가 넉넉하게 잠시 맛을 볼까 하신 정도가 아니다.
그는 거기서 너무 시달리셨다.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께서 될 수 있는 한 이 때가 자기에게 지나가기를 간구하셨다.
주님은 진노의 잔을 생각하면서, 제자들의 철없는 모습을 볼 때, 제자들에게 불쑥 내가 받을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물으셨다.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올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이 함께 깨어있었으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제자들도 피곤해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깨우고 기도하러 가셨지만, 또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실 때는 모세혈관이 다 터질 정도로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마지막에도 또 자고 있었다.
세번째 기도를 다 마치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고 오셨다.
전투에서 승리한 모습으로 등장하셔서, 그는 다시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날의 결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시험을 이기고, 마음을 정하고, 우리의 얼굴들을 일일히 다 기억하고, 머리에 떠올리면서, 아무나가 아니라 특정한 자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어 아픔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시면서, 때가 왔다 하셨다.
땀에 젖고, 핏방울이 맺힌 눈으로 있었을 것이다.
그는 슬픈 사람이었다. 우리의 고난을 잘 알고 있는 분, 인생에서 즐거움을 겪지 못한 분이셨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셨다.
십자가에 오르실 때도 슬퍼하지 않으셨고, 남은 험난한 시간들을 향해 달려가셨다.
그렇게 승리자로서 겟세마네를 벗어나고, 그를 체포하러 온 배신자를 만나러 갔다.
사단은 그 때 자기가 패배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주님은 이제 그 앞에 닥친 어느 인간도 겪을 수 없는 것을 견딜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저주 많은 세상에서 겨우 견뎌가는 우리에게 진짜 견디는 능력과 확신과 약속이 우리 속에서 떠나지 않도록 싸우고 이기셨다.
그는 우리같이 일반 사람이 되셨다. 그래서, 우리를 잘 아시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분이 되셨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할 때, 감사 기도 많이 하자.
어쩌면 똑같은 기도를 다른 말로 계속 할 지도 모른다.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삶을 깔보지 않고, 심각하게 같이 아파해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시고, 같이 눈물 흘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영원히 감사하고, 온 천하에 당신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것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감사 기도 많이 하기 바란다.
'신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완전한 중보자(고난주간특별금요기도회260403) (1) | 2026.04.04 |
|---|---|
| 내 죄악의 응징을 받으신 그리스도(고난주간특새셋째날260402) (1) | 2026.04.02 |
| 내 죄 사하는 언약의 피(고난주간특새첫날260331) (1) | 2026.03.31 |
| 축복으로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시무예배260107) (1) | 2026.01.08 |
| 예수님의 열두제자 (0) |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