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완전한 중보자(고난주간특별금요기도회260403)

lks8284 2026. 4. 4. 10:04

260403고난주간 [완전한 중보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9:11-15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우리 중에 계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뵙는 특권은 원래 우리가 갖고 있는 권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이가 베푸신 사랑과 배려, 어마어마한 희생의 덕을 입었다.

우리 중 누구도 단독적으로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우리 중 누구도 자기 홀로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육신이 다할 때까지도 누군가를 힘입고 있다.

그 때까지 그분을 의지하고, 힘입고, 마지막까서 섬길 것이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자주 잊고 살고 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점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달리 받아들여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굉장히 적대하고, 멸시하고, 싫어했다.

그분이 영광받을 만한 것을 반대로 하고, 그분이 베푼 모든 것을 부인한다.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고, 아무 걱정 없이 살았는데도, 그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근본적인 죄인이다.

다른 것 말고도 하는 짓이 너무 너무 못된 것이다.

정말 고칠 수 없을 정도다.

우리 모두 자신을 볼 때 어떤가.

여러분 속에 양심으로 모든 것을 깨끗케 하려고 하는가.

아니다. 정말 양심을 속이려고 하고, 남을 사랑하지 않고, 되게 치사하다. 너무 오염되어 있다.

외부에서 영향이 와서 조금씩 물들어, 너무 익숙해져 있다.

너무 못됐다.

주의 은혜를 입고 있지만, 본성은 너무 못됐다.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 나라 들어간다고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다.

망상에 젖어 있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감히 하는가.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적이다.

우리는 불의하고, 거짓되고, 악의로 살고, 미움을 항상 간직하고 살고 있다.

우리에게 무슨 의가 있는가.

부분적으로 흉내는 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불의한 것이 많고, 악의가 많다.

우리는 필요할만큼만 선을 베풀고 있다.

이런데, 죽으면 천국 가겠다?

우리 불의가 그냥 없어질 줄 아는가.

죽으면 다 끝나는 줄 아는가.

다 들쳐내서 댓가를 치를 것이다.

망하고 있는데, 그냥 어떻게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하든 하나님과 접촉해야 하는데, 만날 수가 없다.

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적을 왜 만나주시는가.

불쌍히 여기시려고 해도, 하는 짓이 너무 악하다.

도와주려고 해도, 하나님께 너무 더럽다.

하나님도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수준이다.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다.

우리 하는 짓은 사단의 것을 빼닮았다.

어떻하든 나만 살려고 하고, 내 자리를 지키려고, 더러운 세력에 부역하고, 내 이익만 채우기 위해 온갖 불의한 일을 다한다.

정말 정의를 위해서 모두 참고 섬겨야 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준 자기 인생을 정의를 위해 살았어야 한다.

하나님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았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게 일하고, 사회생활하고, 가정생활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자인데...

이런 인간의 상태와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다.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자들이다.

이것은 우리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가는 길을 열어주신 유일한 분 때문이다.

그분은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셨을까.

그냥 가진 것이 많으니까, 여유있게 주셨을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셨다.

속옷까지 다 빼앗기시고, 마지막 남은 것은 목숨 뿐이었다.

그의 목숨을 잃으시면 그는 사망이다.

그의 사망은 온갖 아픔을 다 담고 있었다.

그는 그냥 죽은 척하다가 일어나신 것이 아니다.

죽음은 아픔의 끝이다.

너무 아파서, 생명을 다 빼앗기니까, 마친 것이다.

그는 아프셨다.

우리가 예전에 신학적,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다루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4복음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님은 아프셨다.

주님의 피흘림, 주님의 십자가.

십자가가 무엇인가. 십자가 내밀면 마귀가 떠나는가.

십자가는 주님의 아픔 끝의 사망이다.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절망을 당하시고, 모든 아픔을 다 겪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예수의 피는 그냥 헛되이 낭비되지 않고, 우리를 살리는데 쓰였다.

당신 안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갈망이 있는가.

그 피가 당신을 살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죽음이었다.

당시 세상에서 고안한 가장 괴로운 형벌이 십자가형이었다.

이런 고통을 예수께서 자기 능력으로 잘 견뎠을 것이라고 사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 바란다.

주님의 아픔은 내 아픔을 대신 하신 것이다.

십자가 형벌 이렇다고 형식적 나열을 하지만, 실제 내용은 주님의 고통이었다.

너무 아파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통스러운 형벌이었다.

당시 로마의 형벌은 가혹하게 처벌하여, 다시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신데, 능력이 얼마나 많으셨겠는가.

그런데, 그는 또한 백프로 사람이셨기에, 모든 아픔도 다 겪으셨다.

그는 그 아픔을 다 겪고, 죽음을 당하지 않고는 우리를 대속할 수 없었다.

아픔의 극한이 와서, 생명이 극한까지 달아 없어지지 않으면 속죄되지 않는다.

형벌은 아픔을 주기 위한 것이다.

죄인이 받을 형벌은 너무 괴로워서 목숨이 산산조각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거절하는 자들은 그 형벌이 영원히 진행된다는 너무 무서운 사실이 있다.

신앙인들이라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함이 커버 안되는 것이 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삶을 살면서 아픔을 많이 겪으셨다.

슬픔도 많았고, 고난도 많았다.

그래서, 그를 슬픔의 사람이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슬픈가.

우리를 슬프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때 모든 슬픔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진짜 우리를 위해 세상에 계셨던 분이시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히셨는데, 로마에 빌붙어 자기 밥벌이를 지키려는 자들이 예수를 체포해갔다.

죄를 얻어내려고, 밤새 예수를 괴롭혔다.

그리고, 온갖 매질을 하고, 욕설을 하고, 조롱하고, 뺨을 치고, 침을 뱉었다. 밤새 시달리고, 너무 기운이 빠지셨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게 했는데,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그것을 지고 가지 못하셨다.

배반당하고, 부인당하고, 매도 맞아서 피를 많이 흘려서, 기력이 없으셨다.

구레네 시몬은 지쳐 쓰러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다.

그리고, 굵은 못을 손과 발목에 박고, 십자가에 오르셨다.

그 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다고 했는데, 예수께서는 마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일종의 마취제인데, 예수께서 거절하셨다.

고통을 끝까지 감당하셨다.

갑자기 크게 다치면, 그 순간 아픔과 공포로 나는 죽어있는 줄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생각이 안나고, 아픔이 가득찬다.

주님은 그 아픔을 경감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줄 혜택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으려고 다 받으셨다.

주님은 가진 것 다 빼앗기셔서, 속옷까지도 다 빼앗기시고,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으셨다.

십자가형은 성경에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다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 처형과정을 사람들이 보게 되면, 사람들은 엄청 경계를 받는다.

채찍을 엄청 때리고, 십자가에 다는데, 빨리 죽지 않는다.

고통은 엄청 심한데, 죽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못 박힌 것으로 몸을 버텨야 하는데, 몸이 굽혀져 있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숨을 쉬기 위해, 못박힌 손과 발을 꿈틀거리며 움직여야 한다.

나중에는 힘이 없어서 질식해서 죽는다.

고통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와 강도가 함께 있었다.

십자가형은 육체적 아픔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극도로 욕보이는 처벌이었다.

유대인에게는 나무에 달리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받은 징표였다.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욕했다.

15: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이미 수백년전에 선지자들을 통해, 이런 상황은 예언되었다.

그는 자기를 방어하지 않으셨고, 우리를 위해 그 아픔을 다 견디셨다.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도 그분의 고통 때문이다.

초대교회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이 있는데,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다 보았는데, 그런 고통을 당하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프셨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했다.

하나님과 원수되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구속의 효과는 남아있어야 한다.

내일 내가 쓰러질 수도 있지만, 앞으로의 죄도 담당하기 위해 그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셔야 한다.

우리는 죄를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가실 때, 큰 소리로 부르짖고 죽으셨다.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버림받고, 진노를 다 받으셨다.

그 극심한 형벌을 받고, 마지막에 큰 소리를 부르짖고 죽으셨다.

그리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1500년간 성소의 모습은 유지되어 왔는데, 이제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모든 유대인들은 1년에 한차례 대속죄를 해야 한다.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고, 죄가 사해지면, 안심이다.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대제사장은 하나의 인간인데, 온 백성을 책임져야 한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발목에 끈을 묵고 들어간다.

안나오면, 시체를 끈을 당겨서 빼내야 한다.

대제사장은 모든 백성의 죄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성결하게 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흠없는 어린 양의 좋은 피, 향로의 연기가 가득해야 한다.

아무도 근처에 얼씬거릴 수 없다.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한다.

이렇게 얻어진 것은 하나님과의 일시적 화해다.

그 죄가 진짜 사해진 것이 아니다. 불완전하다.

짐승의 피를 흘리며 진짜 정산은 뒤로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어떤 제사도 진짜 죄를 속하지 못했다.

당장 멸망이 오지 않도록 임시 조치만 했다.

또한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양심의 죄는 씻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어느날 그분이 오셔서 씻어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대제사장은 없을까.

마침내 오신 분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이것이 죄를 사하는 피라 하시고 죽으셨다.

영원무궁토록 살아있는 피, 전무후무하게 이 제사만은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아주셨다.

단 한번의 제사로 완전한 제사를 이루었다.

이제 지성소, 예루살렘 성전 필요없다.

이제 주님이 열어주신 길로 주님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예수께서 죽으실 때, 그 때가 정확히 유월절 양잡는 시간이었다.

딱 때가 맞았다.

수많은 양들이 도살 당할 때, 같은 시간에 예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렸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 모든 현실을 바꾸었고,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연결해주었다.

우리의 마음도 깨끗히 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성령이 우리를 계속 깨끗케 하신다.

9:14-15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마음까지 씻었으면, 의의 병기로 쓰여져야 한다.

이전에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

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는 큰 대제사장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을 때, 대제사장은 그 시체를 빨리 치우라고 했다.

당장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다리를 꺾어달라고 요청했다.

다리를 꺾으면 다리힘으로 몸을 지탱하지 못해서, 질식해서 죽는다.

그런데,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않고, 창으로 찔렀다.

그리고, 방치된 예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이 나타나 빌라도에게 요구했다.

자기 모든 것을 걸고 로마의 반역자로 처형된 예수님을 도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빨리 죽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벌써 죽었느냐고 했다.

빌라도는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주었다.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너무 다행스럽게 내어주어, 요셉은 자기의 마지막 사랑을 다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숨기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고,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예를 다했다.

죽은 분이라도 속이지 않고, 자기 커리어를 걸고 했다.

마지막에 니고데모도 같이 와서 예를 다했다.

안식일 직전 허겁지겁 처리하는 장례식 답지 않은 장례식을 지켜봤던 여자들도 안식일 이후 다시 왔다.

거기 있던 여인들은 제자들처럼 도망가지 않고, 주님이 가장 아프셨을 때, 함께 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통의 길을 택하여, 기어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됨을 제거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저주를 다 가져가셨다.

그는 여느 대제사장이 아니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올 때, 다시는 세상사람들처럼 십자가의 은혜를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자가 되지 말자.

영원하신 대제사장, 그분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