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2고난주간 [내 죄악의 응징을 받으신 그리스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사53:4-8)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고, 사실상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전과 다름없는 것은 오직 우리의 육신적인 조건들 뿐이다.
육신이 있고, 이전처럼 많은 유혹이 열려있다는 점, 그 외에 우리 영적 수준은 상상도 못할만큼 이전과 다른 것이다
하늘은 그렇게 우리를 분명히 보게 될 것이며, 물질적인 세상이 아니라, 진짜 현실의 세상에서 우리는 엄청 큰 보호막으로 씌워져 있고, 신의 인이 찍혀 있는 하늘의 시민으로서 어마어마한 특혜를 받고 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엄청난 권위와 특권을 보장받고 있는 존재들이다.
하나님 닮은 많은 능력과 축복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서, 우리 존재는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세상사람들은 우리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위나 영적 상태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우리가 이전에 시달리던 저주가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세상사람들은 저주 아래서 고난 당하고 있다.
저주 아래서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계속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논하면서, 그에게 영광돌리고 감사하면서, 주께서 약속하신 기쁨이 실제로 우리안에 있고, 하늘에 속한 축복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누리고 있고, 육신으로 자꾸 헷갈릴려고 하지만, 영적인 특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 건강, 영광, 능력, 다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애초에 준비해주셨던 구속의 은혜가 이렇게 다 바꾸어버린 것이다. 엄청난 변화를 이루셨다
그가 시달리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가장 모욕적인 핍박을 한번에 받으시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치명적인 아픔을 당하시면서, 확보한 것이다.
그냥 과거에 그런 일이 있어서, 우리가 은혜받았다고만 생각하면 안된다.
예수께서는 언약을 하셨다.
이것이 새언약이다.
인류 안에서 큰 구획을 나누셨다.
다락방에서 말씀하신,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나의 피, 언약의 피라 하신 것이다.
미리 말씀하셨다.
이것은 구약선지자들도 미리 말해온 것이고, 구약의 많은 제사들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이 날을 위해 준비된 것이고, 구언약 안에서 품고 달려온 것인데, 예수께서 이 날 새언약으로 확정하시고, 몇시간 이후에 잡히셨다.
그리고, 엄청 고난받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임의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가 오늘 이 세상에서 활개치고, 미래에 대한 자신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그 자체다.
우리는 저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릴 때부터 악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나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는지 모른다.
조금 고민하다가 불의를 행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 죽음으로 나의 모든 형벌을 다 감당하셨다.
그런데, 주님 고난 받으신 것도 한 패키지다.
십자가의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할 때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다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형과 나머지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난 받은 것은 한덩어리다.
수천년간 이것은 예고되어 왔고, 예수께서 그날이 오늘이라고 확인해주셨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의 불의를 다 응징한다고 할 때, 살아남을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악이 들어오니, 그것이 점점 잠식하다가, 이제는 본인 자체가 없어졌다. 그것이 이 세상의 악의 성격이다.
그러나, 죄 없으신 분, 이 세상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할만큼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그분만은 자신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저주받은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대신 죽으실 수 있다.
임의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광 기쁨은 주 예수께서 고난 받으신 것 때문이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죄를 범하는지 아는가.
오늘 이사야서는 그런 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꼭 누구를 때리고, 훔치는 형사사건만 생각하는데, 그런 것만 죄가 아니다.
우리는 불의를 너무 많이 행한다.
깨끗한 모습으로 살기가 너무 어렵다.
비유나 갯수를 말하기는 어렵다. 오해를 하니까.
하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불의를 많이 행한다.
모세의 십계명에 비추면, 그 정신으로는 많이 어기고 있다.
하나님이 미워하실 것들, 마귀의 성질을 닮은 것들, 결국 마귀가 원하는 바, 살인은 해야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들, 범죄를 너무 많이 한다.
전혀 깨끗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훈련을 한다.
이론적으로 예수 오래 믿을 수록 더 깨끗하다.
어느날 주의 나라에 갔을 때, 주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범죄해도, 다시 돌이키고 일어나야 한다.
비겁하고, 치사한 일을 하더라도, 뉘우치고, 또 일어나야 한다.
비록 그런 육신의 연약함에도 우리는 지옥갈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오늘 우리가 다시 설 수 있는 것은 우리 저주가 벗겨졌기 때문이다.
수십대 씌여있던 저주가 완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불의를 행할 수 있어도, 저주는 벗어났다.
우리는 이 저주의 굴레 속에서 시달리고, 노예처럼 가는 자가 아니라, 죄를 깨닫는 자들이다.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 있다.
오늘 용서하셨는데, 내일 잘못되어도 또 용서하실 것이다.
이것은 대속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내일 있을 범죄도 주께서 미리 대속하셔서, 용서하실 것이다.
주께서 오히려 나를 격려하시고, 본심은 정말 죄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받으신 모든 것은 우리와 별개가 아니다.
주님이 받으신 모든 고난은 우리를 저주에서 구원하신 은혜 그 자체다.
우리 은혜를 만드신 것은 주께서 아프셔서 만드신 것이다.
모든 인류는 주 예수, 우리 창조주 하나님과 밀접하게 하나된 관계였어야 한다.
오늘 이렇게 볼 때, 말씀의 제목도 죄악의 응징을 받은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형벌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내 죄악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형벌이다.
그러나, 형벌이라는 말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응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내 죄악은 응징을 받는다.
그냥 죽음만으로 된다면, 예수께서 그냥 숨만 끊어져서, 죽음을 맛보는 수준으로 하셔도 된다.
그 죽음 자체만 아니라, 고난 자체가 우리를 저주에서 벗기신 은혜의 정체다.
우리는 죄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하는데, 주께서 대신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역사상 최악으로 인정할만한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의 모든 불의에 대한 응징을 분명히 그가 대신 받아내셨다.
예수님의 고난을 볼 때, 그가 아프셨던 순간이 너무 많다.
그것은 내 삶과 무관하지 않고, 내 불의와 무관하지 않고, 내 영원한 행복과 기쁨과 소망과 무관하지도 않다.
주 예수 고난받으신 것은 나의 저주를 멸하시기 위해, 그가 내 저주를 스스로 받아내신 것이다.
내 저주에 대한 응징을 받아내신 것이다.
그날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이 영문을 모르고 잠만 자는 가운데 마음을 정하시고, 자기를 잡으러 온 배신자에게 자기를 내어주셨다.
사랑한다, 절대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던 배반자, 원수와 내통했던 배반자에게 자신을 내어주셨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입맞추는 사인에 의해 잡히셨다.
제자들은 당장 벌어진 일에 대해서, 당황하다가 다 도망갔다.
예수님은 당장 대제사장의 공관으로 끌려가셨다.
거기서 재판을 밤새 받으셨다.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은 그 재판의 결과를 세상에 내놓고, 다음날 빌라도에게 가서 사형에 처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세번의 재판은 불의의 총체적 집합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날 법은 다 어겼다.
법정의 룰은 다 범하고, 인권이라는 것도 없었다.
최종결론 날 때까지 무죄추정하지도 않았고, 안식일이 코앞에 닥쳐서 3일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그냥 법을 무시하고, 사형을 요청했다.
그날 재판을 했는데, 처음에는 이전 대제사장 안나스가 심문했다.
죄에 대한 혐의 없이 죄가 무엇인지 찾았다.
그 다음에는 잘 안되니까,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 다시 재판한다. 거기서 증인을 들여보내는데, 거짓증인들이 많이 왔다.
말이 부합하지 않으니까, 죄를 찾기 위해, 말꼬리를 잡았다.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를 변호하지 않았다.
공관복음에 보면 딱 한마디 했다.
네가 하나님 아들이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답하셨다.
그러니까, 그 말을 신성모독으로 죄목을 잡고, 법정에서 예수님을 구타했다.
거기서 하나님이 완전히 모욕당하시는 순간, 베드로는 숨어들어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두어시간 전인데, 그 날 예수 모른다고 세번 부인했는데, 저주를 하며 맹세했다.
예수께서 끌려가실 때,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다는 기록도 있다.
그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
베드로는 가장 심각한 죄를 범했다.
예수께서는 그대로 로마 법정으로 끌려갔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일 권한은 없었고, 민중들의 반발이 심할까봐 로마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총독에게 예수를 처형하도록 요구했다.
그 때 가서는 죄목이 또 바뀐다. 신성모독이 아니라, 반란죄로 죄목을 바꾸고, 주장하고, 빨리 죽이라고 졸랐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풀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예수는 스스로 변호하지 않으셨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네가 왕이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나는 진리를 증거하러 온 왕이라 하셨다.
빌라도는 죄를 찾지 못해서, 풀어주려고 헤롯에게 보냈는데, 헤롯도 무죄 의견으로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빌라도는 그냥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했지만, 선동받은 자들의 강압에 의해 물러섰다.
그러자, 명절사면의 대상으로 예수를 풀어주려고 했는데, 군중들은 바라바를 택했다.
군중들이 계속 밀어붙이니까,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너희가 저주를 감당하라고 하니, 그들은 우리 자손에게 죄를 돌리라고 했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하고, 군인들에게 넘겼고, 군인들은 예수를 희롱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연히 받았어야 할 응징을 다 받아내셨다.
오늘과 앞으로도 있을 모든 응징을 다 받으셨다.
오늘 우리는 헌신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보전하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다.
조롱당하시고, 매맞으시고, 모욕당하셨지만, 아무 변명하지 않으시고, 감당하셨다.
우리의 더럽고, 치사하고, 째째한 모습들, 그 저주에 대한 응징을 그가 대신 받으셨다.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미리 언약하신대로.
예수님은 채찍을 맞으셨는데, 쇳조각이 박힌 것이라 한번 때리면 살점이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로마의 형벌은 절대 로마에게 밉보이면 안된다는 경고를 줄 수 있도록 엄청 잔인했다.
십자가형을 한번 시행하면 모두 착해진다.
예수님을 채찍질 심하게 하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 빌라도는 이제 불쌍하지 않느냐, 놔주자고 했지만, 군중들은 빌라도에게 너도 가이사에게 반역한 자냐 하며 겁박한다.
그날 빌라도는 완전히 뒤로 손을 뗐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기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받은 모든 고난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사53:5,8)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인간들은 마음껏 죄를 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께서 죄를 대신 감당하게 하셨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 누구도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난주간에는 우리의 모든 행복을 감사해야 한다.
예수처럼 우리가 처절히 당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넘어지고, 연약해도 괴로워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이 겪으신 모든 아픔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일주일 동안 주님이 겪으신 작은 아픔도 나와 무관하지 않은 것을 알고, 감사하자.
오늘부터 육신이 다할 때까지 회개를 멈추지 말고, 감사 감사하자.
그리고, 주님께 죄송합니다를 수없이 외치는 자들 되자.
오늘 당신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불안하지 않고, 소망을 갖고, 영광의 날을 바라봅니다.
감사드리고, 죄송합니다.
끊임없이 주께 여러분을 나타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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