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연합250706)

lks8284 2025. 7. 11. 00:24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로마서 14:8~9)

202576일 성락교회 주일연합 설교: 김성현 감독

 

(로마서 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분께 우리가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고, 우리를 그분의 품에서 앗아갈 수 없고, 우리에게 불행과 절망, 파멸을 함부로 가져다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에게 속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인되신 그의 심성에 따라, 그의 의도에 따라 그가 베푸시는 모든 것으로 흡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자녀라는 지위를 주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친히 우리를 제자의 반열에 오르게 하셔서, 그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제자라는 차원에서 불러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에게는 상당히 신적인, 또 하늘에 속한 지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은 우리의 주인이신 분의 지위에 합당한 것으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진짜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양자입니다. 다만, 고대 시대에는 양자가 친자식과 똑같은 권리를 가졌습니다. 영화 벤허같은 데에서도 보면, 양자라도 친자와 동일한 권리를 누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녀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낳아주셔서 친아들과 유사한 아들의 특권을 갖게 되었고, 또 동등한 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형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예수는 먼저 나시고 우리는 그 이후에 나온 하나님의 사랑으로 베풀어진 은혜의 열매인 것입니다.

 

또 우리를 제자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주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가지셨을 때, 그가 남기신 자들이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의 제자라는 것은 그들처럼 인생을 주를 위해 바친다는 것입니다.

 

앞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는 보다 궁극적인 차원을 두고 말한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 불리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실질적인 우리의 임무를, 그 임무의 대표적인 위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 제자는 오늘날 ! 저기 선생님이시네.” “얘들아, 너희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아니, 뭐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떡볶이 먹으러 가요. 가세요~ .” 그러고는 우리 선생님이야. 아우, 난 싫어.” 하는 식의 그런 모습이 아니라, 성경에 복음서에서 가끔 엿볼 수 있듯, 제자들은 선생을 따라 집을 떠나고, 죽을 때까지 그 선생의 길을 따르고,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 선생이 추구하는 우주관을 연구하고 깨닫고, 또 이를 설파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자라고 할 때는 나는 그에게서 뭘 배운 적이 있다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쳤던 도마 같은 그 제자들처럼, 예수의 사도들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그 타이틀은 이 땅에서 실제 우리의 현실의 모습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한 삶을 확보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주셨습니다. 그는 단지 자기의 피를 보여주심으로써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주님의 목숨의 가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목숨의 가치.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성을 다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진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참 긍휼한 사랑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더 보여주세요.” 할 것 없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볼 것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자기의 전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게 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참 하나님이시고, 우리 주주님은 우리를 소유하신 구주요, 영원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된 자들입니다. 주님은 목숨을 던져서 우리의 영원한 삶을 확보하셨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이란 이 세상의 삶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긴 삶은 주께서 완전히 확보해 주셨지만, 인생이라는 이 짧은 삶에는 우리가 마치 시험대를 거쳐 가듯, 이스라엘이 일단 홍해 걸어서 넘어가야 했던 것처럼, 우리 눈에는 거칠게 보이는 이 과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셨고, 오늘 주님은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영원히 안전해야 마땅한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육신이 동안, 그가 우리 영혼을 지킬 것입니다. 그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 영혼을 돌보지 못하고, 우리의 행할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베푸시고 지원하시는 모든 것에 대해 제대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영원한 나라로 이끌게 하실 거싱고,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 갈 것을 이미 결단을 하셨습니다. 언제요? 영원 전에. 절대 여러분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오늘 우리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보호는 영적인 우리 자신, 우리 자아에 집중돼 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참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를 열망하는, 주를 앙모하는 자아가 있는가 하면, 괘씸한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괘씸한 자아는 우리를 되게 괴롭힙니다.

 

인생길은 굉장히 짧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인생은 길어야 80년이라고 한다면, 80년도 길어 보이니 50년이라 합시다. 인생이 50년이라 하고 영생이 한 5만년이라 할 때, 50년이 긴 것일까요? 사실 영생을 5만년으로 본 것도 실제는 아닙니다. 영생은 무한히 열려 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무한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그 50년 정도의 시간은 주께서 내게 주신 기회입니다. 주께서 당신이 가지신 30년을 그렇게 사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33년을 잘 사용했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를 위해서, 당신이 임금이신 그 나라를 위해서 성실하게 쓰셨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그 나라를 위해 다 주었습니다. 조금도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33년간의 거친 길을 가면서 맡겨진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보다 더 기뻐하실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 나라의 모든 계획을 사실상 그가 다 이루신 것입니다. 답답했던 것, 계획했던 것, 모든 이루어져야 할 일에 대한 근간을 그가 다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그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나라의 완성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의 육신은 험악한 길을 갈지 모르고, 다소 어려운 길을 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인생은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자기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많이 주어서 한 100년이라고 본다면, 100년이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봅니다. 이런 시점을 갖고 사는데, 사람이 보통 50 좀 넘고 60정도 되면, 인생을 돌아볼 때 실상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계속 후회하면서 살게 됩니다. 인생에 대해서 계속 ?’ 하고 의문을 품으며 슬픔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이 60부터는 그냥 슬프다는 것을 감안하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조금 먹구름이다. 조금 기울어져 가는 시간이다. 인생이 육신에 힘이 빠지고 할 때 슬퍼진다.’ 결국 인생에 활발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생에 온갖 것을 다 투자할 순 없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영원한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거짓되고, 온 세상이 거짓되고, 나라가 거짓된 것으로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던지신 것은 진짜입니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있는 이 작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이냐? 그는 틀림없이 우리를 건지시고, 그 나라로 불러 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목적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 몇 십 년 자기 이름 아래에 주어진 이 시간을 너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성경은 이것에 대해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전체가 인생 몇 십 년, 60, 70년 되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구약 신자들과, 오늘날 신자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이 세상의 일들만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모두가 헤매고,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기어코 우리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다만, 주님이 신자들에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그가 당신의 것으로 취한 자들에게는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너도 함께 일하자! 얘들아 함께 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주의 교회를 위해 투자하고 일하는 자들로서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으로 그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세상에 뿌려놓고 마음대로 해! 내가 이 중에 합당한 자만 천국에 데려갈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인생으로 왔는데,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큰 하나님의 목적론 안에 포함돼 있는 자들입니다. 큰 기둥처럼 하늘까지 솟은 엄청난 뼈대가 있고, 우리는 그 기둥에서 가지들로 조금씩 뻗어나와 있습니다. 그 기둥에는2000년대에 또 저처럼 태어난 사람들이 그 기둥에 뾰족뾰족 가지로 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나는 무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의 길에 우리도 포함이 돼 있습니다. “나도 포함돼 있다!” 그 엄청난 영광 가운데 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난 포함돼 있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고생을 좀 할지라도,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기여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구원하신 데 대해 그래도 좀 기쁘게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앞에 죽음이 기다릴지라도, 우리 인생이 나를 괴롭힐지라도, 내 인생에 내가 빨려 들어가지 않고, 슬프고 답답하고 어려운 인생의 문제에 대해 풍비박산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계속 사랑해 가고, 계속 주님의 나라를 위하고, 걱정하고, 돕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피를 흘리는 일들을 해서 내 삶이 하나님의 눈앞에 조금이라도 괜찮다고 여겨지길 원합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인생을 육신의 길로 열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길을 향해 계속 보고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일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나의 일에 진정한 궁극적인 목적의 길이 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위해 갈 것입니다. 신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고, 영원한 주님의 이 땅에서의 제자가 돼서 갈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나는 주의 교회 곧 주의 몸의 지체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 주의 나라의 유업을 위해서 부르신 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신자입니다. 크리스천입니다.” “그리고요?” “, 그리고 나는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 그래요? 어디에 부르심으로요?” “인생으로 부르셨습니다. 인생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힘쓸 것을 위해서요.”

 

이 목적론을 잃어버리면 목사고, 전도사고, 직분자고, 아무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도 없고, 나라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종교적으로 신학적 지식은 좀 있을뿐, 목적이 없는 사람은 그 속에 있는 것은 정말 가관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을 만나면 그가 하나님의 목적론에 포함돼 있는지 아닌지가 대번에 보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 인생은 너무 슬픕니다. “, 그런 소리 마세요. 난 목사입니다.” 글쎄 목사니까 당신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는 자들입니까? 주님의 목적에 잘 순항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돼야 됩니다.

 

교회의 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거, 똑똑한 사람이 하자.' '믿음 있고 교회를 잘 치리하는 사람이 다음을 맡아야 된다.' '어디 가서 청탁이라도 해야 하나?' 하나님께서 성락교회에 있다면, “거기서 제일 훌륭한 사람 나와라.” 이렇게 하겠습니까? 성경을 보고 우리가 기겁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는 자가 따로 있다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그는 잘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되게 못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교회든지, 하나님의 종을 주어서 그를 혹독하게 부리면서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너네 교회도 목사님이 있고, 우리 교회도 담임 목사님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담임 목사일 수도 있지만, 거짓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목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꿈은 없고 욕심을 부리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두어서 자신의 교회를 위한 목자를 위임해서 교회를 치리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부터 이미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압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날 이렇게 혹독하게 부리시나?’ 그러나 본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거기로 부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든지 다른 사람은 모르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위해 그를 보내셔서 그 멍청한 머리에 하나님의 마음이 꽉 들어 있게 해서 그걸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 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자를 주셔서 이리나 도둑이 우리를 채가지 않게 보호하고, 먹이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아무나 목사하면 되지 뭐.’ 정말 육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 모두에게 준비한 목적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추진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충실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충성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서 그 대신 쓰고 있는 말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믿음 있는 자라고 합니다. ‘믿음있는 자란 무얼 잘 믿는 자가 아닙니다. ‘충성하는 자입니다. faithful. 아주 믿을 만한 자, 우리 말로 하면 신실한 자, 신뢰할 수 있는 자입니다.

 

누가 충성할까요? 하나님의 목적론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론을 느끼는 자, 그 뜻을 알고 순복하여 함께 달려가는 자입니다. 교회의 일이 사람이 마음대로 정해서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되는 것인 줄 아십니까? 모두가 주님이 가는 길을 조금씩 따라가는 것입니다. 좌우를 살피면서 아니다, 이쪽이다.” 하면서 주님은 가시는 길을 가고, 그가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실한 자입니다. 무엇에 충실합니까?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당신은 누구의 성공을 위해 움직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임하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 나도 주님의 종이다!” 그러면서 저기 뭐 고소해라, 고소해라. 다 잡아. , 이제 주인 없다, 내가 주인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짓으로 교회를 차지하고, 나라를 차지하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그가 부르신 자들을 통하여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그 큰 손이 이루시는 것을 멀찍이서 우리는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함께 느끼고,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이 세상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자기 식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인생은 배반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인생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자기 배를 위해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몹시 실망시키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의를 배반하고, 은혜를 배반하고, 긍휼을 배반한 자들이 있습니다. 긍휼을 받았는데, 긍휼을 무자비함으로 다루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린 두 가지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식으로 산다면, 세상에 맞게 살면 그만입니다. 세상에서는 감옥만 안 가면, 잡히지만 않으면 악하게 살아도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세상이라는 곳에서 실오라기 하나의 죄도 갚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불공정이 많지만, 절대 단 하나도 하나님 앞에서 값을 내지 않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현실을 살고 있는데, 영원한 나라의 현실을 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삶도 살아야 합니다. 자기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서 주의 교회의 일에, 또 주의 나라 일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가정 돌아보면 힘이 쪽 빠집니다. ‘이 가정만 해도 내 에너지가 다 빠진다자식들은 어떡하지?’ 이러면서 기운 쫙 빠집니다. ‘열심히 벌어야겠네.’ 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당신의 짐입니다. 당신의 가정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셨습니다. 저들을 사랑해 달라고, 보호해 달라고, 돌봐 달라고. 인생에 있는 동안에 저들을 잘 돌봐 달라고. 그러나 그들은 당신의 영원한 목적이 아닙니다. 하늘에 가면 오히려 예수 안에서의 형제자매들이 더 가까운 가족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당신에게 가정으로 남겨진 그들은 당신이 평생 동안 사랑해야 될 귀한 당신의 사랑의 대상들이자, 여러분의 짐으로 주어진 자들입니다.

 

그럼 부모님은 어떨까요? ‘그들이 나를 보호해줘야 되는데!’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의 보호자입니다. 남편은? ‘정말 남편만 얼굴만 봐도 소화가 잘 안돼.’ 그러지 말고, 그는 당신이 사랑해 줘야 될 자입니다. 자식들은요? ‘, 자식들, 낳으니까, 정말 꼴보기 싫어.’ 그들은 당신이 보호하고 돌봐 줘야 될 자들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먹고 살도록 여러분은 이 땅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들도 돌봐 줘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주 예수의 제자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입니다. 주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길 바랍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고, 인생도 꾸려가야 합니다. 먹고 살면서도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다만, 어디에 초점을 둘 것인가? 쉽지는 않지만, 세상의 일도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주의 나라를 위한 자들로서 주님 나라를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 내 인생, 나는 주님을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인생 동안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인생 동안에 주님의 나라를 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근데 주님께 관심도 없으면서 말로만 주님, 나 주님 사랑합니다!”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마지막에 가서 그렇게 하고 혼나지 마시고, 삶 가운데 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자기 삶이.

 

세상이 완전히 박살 나도 여러분은 박살 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주님과의 열렬한 사랑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하시는 긍휼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내내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께 감사하여서 주께 기억되고, 주께서 흡족히 여기시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나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은 이후에 주님은 나의 주님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나는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은 항상 나의 주님이셨고, 죽든지 살든지 주님은 나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나를 인도하시고 받아주시고, 오늘 나의 삶을 받아주시고, 부르심을 받은 나의 삶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두를 역사해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영혼들 다 도와주시고, 우리 성도들 역사해 주셔서, 이 세상 인생길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인생 동안에 받은 이 길을 잘 가게 하여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우리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쁨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이루어 주시는 모든 것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50706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로마서 14:8~9)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태초에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