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스스로 속이지 않는 성도(연합250720)

lks8284 2025. 7. 24. 14:24


스스로 속이지 않는 성도(갈라디아 6:7-8)

2025년 7월 20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8)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는 구체적으로 신앙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자들일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우리의 본질이 무엇일까? 우리의 핵심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분명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많은 신자들이 이 부분이 분명치 않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굉장히 높은 비율의, 성도들 전체 숫자의 상당수가 이런 부분에서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교회에 속했다는 거, ‘기독교인 신분’이 그 정체성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 다니고 시스템에 속해 있으면 된 것이다’라고 그것을 실제에 대한 표로, token, 그 증거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판단하고 유지하다 보니, 그게 점차적으로 고정된 상태에서 또 다른 개념을 낳게 되고, 또 계속 어떤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원숭이 뭐는 빨개~’ 빨가면 사과 나중에는 백두산이 되어버리는,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는 거죠. 근본을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백두산을 외치게 되는 그런 꼴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 하나님의 구원, 구원을 주시는 자와 또 구원을 받는 자의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구원받은 자가 이제는 자기의 결단과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확증해 나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우리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의 열매를 맺도록 명하셔서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주심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범우주적인 증거를 남겨야 되는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완전한 구원을, 육신을 버리고 하늘나라를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신앙이 무엇일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그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 될까? 기도회에 다 참석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라기 보다 남들이 하는 것만큼 하고, 그러면 될까?

또 교회의 이런 분위기에 따라 어디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 그러는데, 사실 능력은 우리가 자연인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가능케 하시는 것들을 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성경에. 상당 부분이 그것인데, 너무 그런 쪽으로 가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좀 잡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여지고요.

또 성취, ‘내가 뭐가 이루어져야 된다’, ‘교회 신앙적인 것에 이루어야 된다’ 그러면 무슨 회장 뽑고 이러면 죽어라고 서로 멱살 잡고 싸워 이겨내서 회장을 해 내야 되네요? 그렇게 되면? 원래 나서서 하는 성질이 아닌, 그런 성격이 아닌, 그런 식의 길을 걸어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남들 앞에서 말 잘하고 이렇게 한 사람만이 꼭 성취를 많이 하고 그럴 수 있나요? 삶을 다소 남보다 좀 평범하고, 자기를 우수하게 가꾸기에는 삶의 환경이 대단히 좀 각박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자기 겉모습이 훌륭하면 천국에서도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앙생활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은 우리의 영혼, 정말 보잘것없는 우리 모두의 영혼이지만, 자기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불러주신 그곳에서 자기가 시작하여서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열매를 성실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누구에게는 엄청난 일이라고, 상대적으로 많은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대단히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를 칭찬하고, 온 세상에 이 사람 얘기도 전하라고 하실 것이고,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엄청난, ‘이 정도 했으니, 하나님도 날 너무 내려다보시지 않을 정도로, 나는 굉장히 높아진 거 아니냐?’라고 볼 때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것입니다. “너는 사단을 닮았구나.” 오히려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보는 식으로 보지 말아야 되고,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할 때 이맛살이 많이 접히는 사람이라서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진실로 그런 신앙의 어떤 정통적인 길을 받은 것은 특별하게 훌륭한 것이지만, 마치 이런 것이 진실에 대한 어떤 증거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겉모습을 볼 때, 사회적 배경이나 이런 데서 잘 나가는 사람이 있죠. 사회적으로는.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하면 교회 일도 좀 큼직하게 할 수 있고 그런데, 그런 것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달란트를 준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다섯 달란트를 주고, 혹은 조금 못한 사람은 두 달란트 주는, 그런 경우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다면 이 사람은 자기의 세상적 직업이 날아갈 정도로 교회를 섬겨야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처음에 요구하는 바가 작고, 적은 것을 받은 자들은 크게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자가 아닌 거죠.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꿋꿋이 견뎌가고, 크리스천으로서 남고, 작은 것이지만 내 때묻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열심을 다해 내 주의 교회를 생각하고, 남보다 더 마음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시간을 내서 돕고 하는 자가 천국에서 훨씬 높은 자리에 있어서 쳐다보지 못할 곳에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 보는 눈으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세상에 보이는 눈으로 ‘성취가 없으면 작은 크리스천이다’? 누가 그런 식으로 얘기했나요?

주님이 하신 말씀은 복음서에도 보면, 깜짝 놀랄 것들이 많아요.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을 못 간다’든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든지,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라든지, ‘잃는 것이 얻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만 봐도, 우리가 익숙한 그런 정상적인, 세상에 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치가 대단히 신기한 거죠, 맞지 않는.

주님은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을 찾아오지 않았어요. 가난한 자, 병든 자, 몸이 불편한 자, 또 슬픔을 당한 자, 절망에 빠진 자, 외로운 자, 아무것도 없고 죽어가는 자기 아들 하나밖에 없는 자, 이런 자들. 죽어가는 어린 딸이 있는 자, 그런 자. 크리스천들은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보고에 의하면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 믿는 자들은 전부 다 가난한 자고, 부자들은 그거에 비하면 굉장히 그 숫자가 적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앙이 뭔가 좀 조화가 안 된 것일까요? 아니에요. 부자고, 풍부해서 자기를 잘 갖추고 잘 나가는 사람들은 주님을 잘 섬기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상대적으로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끼느라고 자기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없는 사람은 천국을 향해서 많은 걸 내놓습니다. 오히려 있는 사람은 더 인색하지만,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주님을 섬기고 내일은 주님께 맡길 것입니다. 오늘은 오늘로의 걱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일, 모레, 한 달 후, 두어 달 후가 걱정될 텐데, 오늘을 위해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멀리 내다보는 그런 사치를 부릴 수가 없어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에게 나타났을 때 정말 뵐 수도 없이 너무 그는 의롭고, 온 세상을 비추시는 거룩하고 깨끗하신 분이 지나가다 나에게 딱 서치라이트를 비췄는데, 더러운 나의 모습을 볼 때에 절망스럽고, 어디 숨어야 될 텐데, ‘산아, 바위야, 나를 숨겨라.’ 숨겨야 될 텐데, 그분이 사랑해 주시고, 대신 아프시고, 대신 고난 받으시고, 우리의 진짜 고민을 대신 다 해 주시고. 우리는 ‘고민된다.’ 이렇게 잠깐 ‘까꿍’ 하고 말 때에 주님은 다 겪으시고. 미리 나를 위해 섬겨주시고 나를 만나시는 분이거든요.

우리는 주님 앞에 죽을 때까지 빚진 자예요.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대한 은혜를 갚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혜 갚는 제스처나 똑바로 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의의 열매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아주 목에 힘주고, 대단히 자기가 위대한 것처럼 하고, 거룩한 것처럼 하는 거, 그리스도 신앙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은 다 거절하셨어요.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셔서 주님은 손사래 하시면서 ‘저런 사람 되지 말라’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 주님 앞에 우리가 겸손한 자가 되길 원하고, 지옥에 갈 자가 간신히 불구덩이에서 다 태워서 살려짐을 받은 자로서, 주님 앞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주님의 영향을 받아 나도 내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나도 내 주님이 하시는 일을 위해 나를 씀으로써, 나도 주님께 드리는 그러한 대가 없는 형태의 놀라운 결단으로 주는 헌신이 있어야 돼요.

제가 여러 말 하면,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더욱더 헷갈리게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빈 마음으로 말씀을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면 꼭 말씀을 이렇게 주시는 것 같아요.

교회에서 성경 이곳저곳에서 이 구절, 저 구절 여러 가지 세트, ‘이렇게 하라/말라’ 세트. ‘do not/do’ 이것만 계속 하면, ‘이건 하고/이건 하지 말고’ 이게 아닌 거예요. 나도 설교를 그렇게 해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질 않지만, 나는 하나님이 나를 그냥 끌고 가시는 대로 인도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그렇게 하는 것인데, ‘이거 합시다, 맙시다’ 하면 여러분의 귀가 막혀서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들려요.

나는 우리 교회의 사태를 겪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난 하나님의 복음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난 그 뒤로도 공부를 많이 하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뭐 하라, 안 하라’ 그리스도 교회 신앙을 멋지게, 깔끔하게, 옳게, 많이, 더 열심히, 이거 아니에요. 그거는 부차적인 거죠. 하나님 앞에 진실한 정성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진실함으로. 나를 속이지 말아야 돼요.

신앙생활 할 때 우리 거꾸러지고 넘어진 사람들 보면, 또 지금까지도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 보면, 자기의 양심을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그런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이거, 나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아요. 내면에 하나님이 이미 심어주신, ‘북박이’식으로 내면적 내게 있는 양심을 나는 삶아버린 거죠. 다 기능을 못하도록 어느 결에 나를 배반한 거죠, 내 스스로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 진짜 믿는 게 아닌데, 이것이 신앙이라고 이렇게 하고서는 나머지는 하나님을 생각도 안 하고, 신앙을 오히려 이용하여서 ‘내 종교 문제 해결’ 이렇게 보는 거죠. 하나님 사랑은 없고. 나를 속이는 거죠.

“아~주여!” ‘예배 성공하자!’ 예배 보는데, 예배 보고 나서는 완전히 세상 사람과 다름없어. 그렇다고 해서 주머니에 손 넣고 뭘 슬쩍 하고 이렇게 하는 거라기 보다는, 야구 방망이 가지고 동네 두들겨 패고 다니고 이런 건 아니더라도, 은행에 복면 쓰고 들어가고 이런 건 아니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엔 다름이 없을 거야.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자가 아닌 거죠.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던, 당신의 용서를 받은 자가 아닌 거죠. 당신의 사함을 받은 자가 아닌 거죠.

이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있어요. 주일에 가서 ‘예배 성공해!’ 그래서 ‘아, 성공!’ 하고서는 ‘끝!’ 하고서 나왔는데,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질 않아. 교회가 다 그래. 어떤 목회자의 영향력을 받으면 그렇게 될 수 있겠죠. 어떤 교회든지 그러니까, ‘저 목사님은 어땠을까? 어떨까? 하나님을 잘못 소개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성취만 있으면 다 되는 것처럼 그렇게 가르치진 않을까? 목사님이 자기가 원하는 세트의 그 말씀들만 전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에베소서를 그냥 한 거예요. ‘내 마음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하나님 말씀 하나도 빼놓지 말자! 균형을 잡자. 하나님의 말씀을 고스란히 싹 하나도 피하지 말고 다 매 맞듯이 받아보자.’ 이게 내 의도였어요. ‘그래야 그리스도 교회의 실체를 분명히 알 것이다.’ ‘내가 말하는 좋은 것만, 내가 설교하기 쉬운 것만 골라서 하자.’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문제가 되겠구나.’ 난 그걸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6장 9절 보면,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한다’ 그랬습니다[1]. 그 뒤에, 도둑질하는 자, 탐람하는 자, 술 취하는 자, 후욕하는 자, 쭉 나오는데, 포인트는 이거예요. 불의한 자. 뒤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죠.

예수 믿고는 우리가 훌륭한 일을 성취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하나님 닮기를 사모하고, 없어도 내 하나님을 향한 내 조그만 마음이지만 내 마음을 ‘아, 제발, 내 마음을 그래도 가치있다, 귀하다 여겨 주십시오.’ 바라고, 그 영혼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받아주시고, 큰 영혼으로 받으실 거예요.

‘속지 말라.’ 이 교회의 분위기, 귀신 들리는 사람들에 속지 마세요[2]. 그냥 원수에게 계속 불려다니고 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세요. 우리 교회가 원수의 더러운 영향에 많이 사로잡혀 교회가 너무 안 좋았었습니다.

또 말씀이 있어요. 고린도전서 3장 18절에도 같은 말씀인데,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3] 정말 내 신앙생활이 온전히 돼 가는 것처럼, 또 ‘내 사회에서도 난 좀 잘 나가고 있다’는 이런 식으로. 속에는 악한 것이 많은데 ‘난 항상 착했습니다.’라고 하는 식으로.

이런 신앙이기보다는, 나도 우리 젊은 영혼이나 누구나 만나면, 서로 얼굴을 딱 보면 이걸 느끼길 원해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구해준 자들.’ 그러니까 자랑하고, ‘음~나는 어디 학교 다니고, 나는 어디 고등학생이고, 넌 중학생이고, 뭐 어디 살고…’ 서로 견제할 것이 없는 것. ‘나 지옥에서 살아났어.’ 이 얼굴이 돼야 돼,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나는 크리스천들, 우리를 보면 서로에게 긍휼 받은 자, 감사가 가득하여서 조금만 자극받으면 그냥 서로 돌봐주고, 위로해주고 할 이런 마음들이 가득한 자. ‘오, 남을 위로해 준다니 굉장히 백그라운드가 있나 보죠?’ 백그라운드, 하나도 없어요. 나 되게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어, 무식하고. 그렇지만 천국을 나눠주는 자, 부유한 자.

우리, 서로 보면 견제하고, 이런 건 교회에서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십자가 앞에서 대단히 한번 돌이킨 사람들로 꽉 찼으면 좋겠어요. 자기를 속이지 않고, 다른 자인 것처럼 변장하지 않고, 그래서 자기에게 이미 굉장히 실망해서 한쪽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했던 자, 이렇게 쭈그러들었는데 그리스도 통해서 이렇게 한번 용기를 받아서, 이렇게 하나님이 용기를 북돋아줘서 온 사람. 자세가 약간 이렇게 될 거야. ‘와!’ 이렇게 목에 힘준 사람 말고.

그런데 그리스도 교회 오면, 여긴 구원의 장이거든요? 여기는 당신을 구원해줘요. 하나님이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해줘요. 지옥 사람, 떨어지는 걸 받아가지고 천국으로 끌려고 힘을 써주세요. 세상의 누구도 당신을 천국으로 이끌지 않아. 누구도 망해가는 당신을 막아주지 않아! 누구도 당신을 경고해 주지 않고, 누구도 당신을 이끌어주지 않고,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을 교화시키고 변화시키고, 고쳐주고 이끌어주지 않아. 용기를 주지 않아.

우리는 하늘의 말씀으로 용기를 얻어요. 교회를 아름답게, 교회를 거룩하게,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한 신실한 자들로 다 변화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헛된 말로 누구를 속이지 마라[4].’ 세상의 이런 걸로 속이지 말아야 돼요. 세상의 말로 해서,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그걸 떠나 다른 것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배운 것 외에 다른 세상 것이 이것을 압도하면 안 됩니다. 누구도 세상의 것으로 속이지 못하도록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주님, 내가 주의 교회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별 거 하는 것이 없는, 난 그냥 중등부야. 그냥 나 학교 생활하기도 바쁘고 이렇게 했는데, “그러나 너는 주의 교회 사랑했고, 너는 정말 그 마음으로 주님 존중하고, 주님을 명예롭게 하는 소원이 있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주의 친구들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주의 교회를 위한 요만큼의 네가 시간이 있을 때 정말 주께 네가 충성을 다했잖아. 주님의 교회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가 나쁘게 될까 봐 네가 어디서든 나와서 싸울 격동을 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 영혼 귀하잖아요.

여러분 어린 영혼들도 세상의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폼을 잡고, 엄청 지혜가 있는 듯한 그런 성도들에게 기죽을 거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이 주님의 십자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한 건지를 깨달으면, 당신은 그 영혼보다 나을 거야.

엊그저께는 무슨 리스트를 봤어요, 옛날 신자들 리스트를. 우연히 정리하다가 툭 떨어져서 봤는데, 너무 서글픈데, 거기 사진에도 근엄하게 이렇게 있는데, 그거는 아니더라고요. 우리 교회에는 진짜 삐뚤어진 길을 가려고 온 것 같아요.

빌립보서 1장 10절에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서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라[5].’ 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주님의 인격에 대한 그 정성된 주님을 섬김. ‘이게 뭘까?’ 난 잘 생각해 봐요, 여러 가지로. 주님, 예수님, 우리 하나님, 예수님 인격을 내가 사랑하는 거예요. 그분에 대한 진실한 그 정성 드림. 그분에 대한 예의, 그분에 대한 이것이 충실한 거죠. 믿음이고.

그래서 이 정성이라는 게, ‘주께 정성 드림’이라는 것이 뭔가 하면서 우연히 사전을 이렇게 보니, 거기 그런 것이 나오더라고요. 진실되고, 영어로 sincere 이렇게 나오고, 정성스러운, honest, devoted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헌신하고. 그분에 대해 성실한 것, 그분에 대해 진실한 것. 난 이거 아주 아름다운 말이라고 봐요.

하나님 앞에 진실한 정성을 드리는 그 영혼, 이게 근본입니다. 신앙을 설명하는 방법이 수만, 수백 가지 되겠지만, 이거 바탕이에요. 이게 바탕이 되고 있지 않으면, 여러분의 신앙은 의심해 봐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속이지 말고 주님 앞에 진실해서, 우리 앞에서는 썩, “예, 여러 성도 여러분, 나 더러운 마음, 더러운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해봤자 박수하고 칭찬해 줄 사람은 없어요. 그렇게까지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 앞에 진실해야 돼요.

살아계신 주님 앞에 나타난 거예요. 우리 모두 한 번도 주님 만나지 않았는데, 그분 앞에 나타났어, 우리가. 이게 우리 신앙이에요. 끝까지 우리를 살려주려고 보고 계신 주님 앞에 나타나 있어요. 아무도 주님으로부터 숨지 못해요.

그러나 주님은 나를 승리케 하고, 나를 살리고, 나를 영광에 이르시게 하기 위하여 나를 보고 계시는 거예요. 이 불안하고 이 부족하고 완전치 않은 나를 그가 당신의 옷으로 입혀 완전케 하시려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은 꾀 부리고, 남은 성공하고, 내 인생은 손해 보는 것 같고, 교회에서도 이렇게 하면 내가 낮게 보이는 것 같고. 이런 데서 억압받고 계시지 말고, 우리 주님이 우리로부터 소외받거나 무시당하거나 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같은 주님을 향한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신실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나는 간사해서 나도 모르게 날 속이는 자일까요? 나는 하나님 무시하는 자일까요? 나는 내 주님 앞에 있는 내 새 인생을 그냥 성의 없이 그냥 다루고 있는 자일까요? 아니면 나는 주님 보시기에 그래도 합당한 자일까요? 주님 원하시는 그런 종류의 자일까요? 주님, 나 주님에게 진실한 정성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 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삶을 통하여 진실하고 허물없이 선을 분별하여서 행하며 정말 의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주시고, 내 영혼을 받아주시고, 내 영혼을 버림받지 않게 도와주시고,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실망되지 않도록 내 영혼을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영혼들 다 도와주시고, 우리가 감각 없고, 내용 없는 형식만 있고, 종교 형식적인 그런 영혼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 주님이 기대하시는 의를 추구하는, 마음에 진실한 회개가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늘 죄송스럽고 또 감사하며 또한 영광 돌리는 그러한 정말 강렬한 욕망으로 함께 섬기는 우리 성도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아닌, 계속적으로 자신을 속여서 정말 하나님이 원치 않는 그런 사람으로 나중에는 변모하여 다니는 그런 자가 아닌, 정말 주님 앞에 진정한, 그 진실한 정성으로 섬기는 우리 영혼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녹취: 성락선교센터 YEH

[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 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    11)

[2]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

[3]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18-20)

[4]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엡 5:6)

[5]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