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아신다(연합250727)

lks8284 2025. 7. 30. 23:40

250727연합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아신다] 김성현감독

 

(시편139:1-4, 23-2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가장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은 바로 그가 모든 걸 다 아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거, 기본적인 거, 하나님의 특성, ‘하나님이시라는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먼저 우리가 제시해야 될 것 중에도 가장 앞선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는 점입니다.

 

그는 물론 모든 걸 지으셨으니 다 아시죠. 모든 생물들의 생태적인, 또 생리학적인 모든 것을 디자인하신 분이 뭘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복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안겨 가느냐, 안 하느냐에 대한 굉장한 긴박한 시간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는 교회는 망합니다. 내 생각에, 무너지는 교회, 실패하는 교회, 멸망에 이르는 교회, 고난을 받는 교회, 분열하는 교회, 거기에는 하나님의 가장 기초적인 속성을 무시하고 있거나,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걸 아시는데,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가 늘 세상 만물을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의 대부분이 우리의 삶의 비즈니스를 다 이룹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마음을 느낌으로써 다 이루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139:1) ‘하나님은 나를 보시고요, 나의 앉고 일어섬을 다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아시며, 또 나의 길에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내가 하는 말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주님은 다 알고 계시다.’(139:1~4)

 

하나님이여, 저 악인들이 나를 다 치려고 합니다. 나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정말 악한 마음으로, 악의를 가지고 나를 파괴하려고 하오나, 주님은 날 보호하소서.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내 마음을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십시오.”

 

시편 보면, 70~80편 가까이 앞쪽에는 거의 이러한 관점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 마음 아시죠? 하나님, 내 마음 아시죠? 이 세상에 나는 갈 데가 없습니다. 원수들이 나를 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내 마음 아시죠? 주님 내 편인 거 압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저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저 악인을, 저 사악한 것들을 쳐서 복수해 주십시오. 내가 당한 거 다 갚아주십시오. 주여, 재촉하옵소서, 너무 괴롭습니다. 주님 없이는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 나오셔서 나를 도와주옵소서.” 이 내용이거든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는 시편 기자가 간절히 원했던, 이 땅에 있는 진정한 신자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바로 그들이 간구하던 간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복음서에 보면, 성경 곳곳에 숨어 있어요. 주님은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알고, 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니까 구할 때도 옳게 알아야 된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다.”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할 때, 그는 그들을 다 아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속성을 그대로 거기서 갖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요.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사람의 제한을 무수히 많이 갖고 이 땅에 계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것을 같이 공유하시기 위해서 자기에게 제한을 두셨던 거예요.

 

그러나 예수께서 사람의 속을 아는 것은, 앞으로 올 일들을 아는 것은 조금도 그가 포기하지 않으셨고, 신적인 그런 모습들을 고스란히 갖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들이 어떻게 예수를 죽일꼬 하고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서 떠나니저희가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지 못하리라 하리니,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또 어떤 사람이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해?’ 하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의 중심을 아시고했습니다.[1] 곧 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고 계셨습니다.

 

또 성경에 말하기를, 나다나엘 같은 사람에게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분명히 알고 계셨어요. 속을 알고 성격을 알고 계셨고,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도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고 사람의 속에 있는 걸 다 보고 계셨다[2]’고 그랬습니다.

 

성령도 우리 마음을 다 아셔서,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다 아시는 성령이 아버지께 간구하여 주셨습니다.

 

또 성경에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시느니라.’[3] 이것은 비단 신약교회에서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본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 아는 사실이에요.

 

역대하에 보면, 솔로몬 왕이 기도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누가 이렇게 손을 펴서 기도하거든, 주여, 하나님께서 들으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하나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진실한 사람. serious 하게, 머리 힘준 사람 말고, 정말 하나님과 관계가 열려 있는 사람. “하나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갚아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이 사람은 내게 진실했노라. 이 사람의 일을 도울 것이다. 저 사람은 가짜다, 저 사람은 악인이다. 내가 보응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보면 한없이 가는데,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 다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확실한 기본적인 개념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모든 걸 그르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셔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주님을 만났어요? 복음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우리 모두가 죄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복음의 용무가 뭘까? 복음이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십니까? 복음은 죄를 척결하는 거예요. 죄가 우리를 멸망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내어주심을 통하여 죄의 대가를 쓸어버렸고, 또 죄로 인해 심판받는 문제를 그분이 다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죄 자체가 사람을 마음대로 노예 삼을 수 없도록 사람들을 초대를 했어요, 복음 안으로.

 

그래서 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건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나도 죽는 날까지는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끝까지 계속 생각해야 돼요.

 

우리는 죄에 해방됐다!” 이러면서도 내가 범하는 건 역시 죄입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러나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회개하고 나는 죄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또 저항하려고 했고, 또 이제는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해서 했어도 나는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죄에 도무지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복음으로 사는 것이죠.

 

우리가 복음 외에 뭐 엄청난 게 있다고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을 통하여서 여기까지 있는데,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나같은 죄인이, 옛날 나 죄인과 지금 엄청 다르게 변화된 나를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나는 죄에 대해서 해결한 사람이라고 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주님과 연결이 되고 있죠. 여러분도 마음이 주님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신앙생활이 뭔지 아십니까?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한 거예요. 도무지 나에게는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는 그 상태, 너무나 놀라운 은혜가 된 거죠. 그리고 내게 새로운 지위를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훌륭하게 이제 살고 있죠.

 

그러나, 우리에게 해결된 문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화목된 거예요. 이제는 내가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그의 성전에, 그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땅에 있지만은 우리는 주의 보좌 앞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어 주셔서 지금은 주님 보좌에 용감하게 나아가느니라.” 했습니다. 이전에는 누구도, 어둠이 태양 앞에 설 수 없을 정도로, 서면은 그냥 타버리고 없애 버려지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복음으로 인해서 아주 심각한 우리의 그 결점이 다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의 삶은 하나님과 나의 막힘이 없어요.

 

다만 하나님과 나는 용서하셔야 되는 분과 용서받는 자입니다. 내 마음이 회개하고, 내 마음이 하나님과 마음이 터야 돼요. 우리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 나 교회에 왔습니다.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마치 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아이고, 아이고 잘 오셨네~” 손님 맞듯이 그렇게 여러분을 인정하는 줄 아십니까? 내가 매일 주일에 빠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주님이 날 인정하는 줄 아십니까? 주님이 관심이 되는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내가 죄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 때문에 주께서 여기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의 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주님이 나와 연결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우리가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모레도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원래 죄인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제는 죄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죄를 미워하고, 내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와서 주께 회개하고, 나는 주님이 이끌어 가신다. 내가 죄인인 걸 주님이 다 알고 계시지만, 이제 주님은 나를 품고 가신다.’ 이게 구원의 복음의 삶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이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모르시는 줄 아세요? 어떤 사람들, 신앙생활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못 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런, 이런 자기의 모습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와서 이렇게, 이렇게 하는데, 사실은 다른 악한 목적이 있어서 했거든요? 그걸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정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도둑질을 하거든요?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려고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교회를 폭파해서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면서 거룩한 척합니다.

 

그거 모르시나요? 왜 모르세요?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 다 아시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느니라. 외모를 보시지 않느니라.’ 다 아시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를 보시고, 사람의 심장부를 보시느니라.’ 다 아시는데.

 

우리 신앙생활은,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다 아시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우리의 정말 최후의 수단이에요.

 

우리 젊은 영혼들이 있는데, 교회에 와서 회개는 하지도 않고, 교회 와서 다른 건 다 하고, 능력이 있어서 뭘 좀 나타내고. 양심은 자기를 속이고 있고. 양심이 이제는 감각도 없어.

 

비록 주님 앞에 내가 매일 하루에 몇 번씩 무너지더라도, “정말 주님, 날 용서하옵소서.” 또 앞에 나와서 주님, 날 용서하옵소서. 주님, 나 주님 사랑하고 주님께 더 다가가길 원합니다. 연약하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사람이 먼저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다.” 했습니다. 누구죠? 바리새인과 그 세리의 말씀에. 하나는 한없이 높아져서 주여, 나는 이런 일을 하고, 금식도 하고 십일조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쳐다보지도 못하고 날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사람은 평생 회개하며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항상 내 마음이 하나님과 터 있어요. 하나님은 이 사람이 죄인인 걸 알아요. 하나님의 그 아들을 죽인 대가로 여기 서있는 자인 줄 알아.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 대신 사랑을 쏟아줘야 되는 그 장본인이야. 그 사람은 자기가 부족하고 죄인인 걸 알고서 너무 미안해하고 있어. 이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 자기를 용서해 주시는 자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

 

근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온갖 종교적인 것으로 자기가 신앙적으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속이고 있어, 자신도 속여. 조금 있으면 자신이 누군지도 몰라.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기도 몰라. 하도 거짓적으로 살아서.

 

그렇다고 사람들~ 난 누구를 때렸습니다! 난 누구, 돈을 훔쳤습니다!” 이렇게 하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들 앞에 다 드러낼 수 없을지라도, 자기 양심이 하나님 앞에 정말 엎드려져서 매일 그분과 마음을 통해서 용서받는 삶을 살아야 돼요.

 

자기를 속여서 나중에는 자아상실. 나중에는, 신앙생활을 30년을 했는데, 자아상실, 이 사람은 없어, 육체만 돌아다녀.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유일한 연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 하나님과의 연결, 성령을 모실 수 있는 연결은 바로 내 죄 때문에 주님 앞에 나를 온전히 굴복하고 회개의 삶을 이어가는 이 사람이에요.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된 사람.

 

복음이 그걸 제공하는 거예요. ‘좋은 소식이다! 완전히 너희는 지옥행인데, 좋은 기회가 왔다.’ “특혜가 왔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 어떻게 해요?” “죄 있는 자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 지옥 가니라. 그런데 특혜가 있습니다. 당신을 구원할 방법이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나머진 다 하겠습니다.” 회개를 못하냔 말이에요. 죽을 때까지.

 

, 회개했습니다.” “언제요?” 예수 믿는 날. “내가 20151225, 그때 나 회개했는데, 그날.” 하루. 아니에요, 당신,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 돼요.

 

그러고서는 교회 다닌다고 엄청나게 자기를 과시하고. 성경에 말하잖아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축복하시고.

 

왜 교만해요? 자기 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일단 거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많은 불의들을 행하고 있어요.

 

회개하는 자들은 불의를 행하려고 하질 않아요. 혹시 실수했어도 괴로워하고, 용서받고 개선하려고 하죠. 이 사람은 주님의 나라에 이롭죠. 복음화 되어야 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사람은 이로워, 주의 교회에.

그러나 자기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자기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자기를 견제할 수 있는 존재가 없어. 자기가 알아서 해. 자기는 하나님이 자기를 모르신다고 생각해. 자기 마음을 읽지 않으신다고 생각해. 자기가 한 말을 모르신다고 생각해. 자기가 한 행실을 모르신다고 생각해. 이 사람, 하나님 없이 사는 거예요. 종교적으로.

 

그래서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 ‘교회에 갔더니 가르치더라,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하더라.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하더라.’ 거기서 있는 거죠. 신앙의 근본은 빠져 있어. 근본은 하나님 앞에 내가 무릎 꿇는 거예요. 근데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악행을 하고.

 

성경은 하나님을 보수하시는 분이다.’ 그랬습니다. 보복하시는 분. 성경에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으셔서 다 품어주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품어주셨어요. 하나님은 불의, 죄는 용납을 안 하시는 거예요. “예수께서 용서하셨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고 그래서 정말 죄도 다 받아들이신다?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죽임으로써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 안 하세요. 절대. 누가 그거를 치러야 돼, 값을.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우리가 고의로 하나님, 모르지?’ 하고서 자기가 범한 행실을 다 보응을 받게 됩니다. 각종 그런 악행. 교회를 배반하고, 겉으론 좋은 소리 하지만 사실 교회를 강탈해가지고 팔아서 돈 나눠 가지려고 했던 것. 모든 불의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돼요.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속입니까?

 

교회에 있으면은요, 누구는 어떤 사회 지위도 있고, “나 사회에서 무슨 뭐야, 난 뭐 누구야.” 그런 사람이 교회에 오면, 거룩하고 존경은 다 받아. “, 저분이 사회에서 뭐 하시는 분이래.” “안녕하십니까? 어흠.” 폼이나 잡고 이렇게 하고서는 교회가 어려울 땐 전혀 돕지도 않아.

 

나는 진짜로 축복하는데. 여러분, 내가 축복하면 뭔지 아세요? 나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내 자존심이야. “하나님, 나 충실한 종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권세를 주옵소서.” 그래서 난 하나님 앞에 가서 이 사람을 위해서 축복하는데, 이 사람에게 내가 축복한 것에 대해서 그 결과가 탁탁 나타나길 원해요, 나는. 나는 그걸 기대하고 하는 것이거든요? 내가, 하나님의 종이, 보시는 그분에게서 능력이 내게 함께 있다는 걸 나도 그걸 과시하고 싶고, 나도 그런 하나님의 나를 신뢰하심을 확보하고 싶어요. 나는 하늘이 너를 보고 있다라고 그렇게 축복하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축복하는데, 아무 인정을 안 해.

 

젊은 우리 영혼들,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 다 알고, 당신의 모든 행위를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잘 되길 응원하고 싶어 하시고, 여러분이 승리하기를 원하고, 지원하시고 제공하길 원해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원해.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승리의 근원이 되길 원하고, 승리의 힘이 되길 원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이 되길 원하고, 보호자가 되길 원하고, 당신이 승리의 원인이 되길 원하는 거예요.

 

근엄하고 우아하고 의로운 척하지 마세요. ‘작은 나, 이런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아까 그 찬양처럼 내 처음과 마지막,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진 게 없어. 이 세상이 날 지지하지 않아요. 이 세상이 나에게 제공하지 않아요. 난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은 내게 있어. 예수, 나의 유일한 모든 것. 내 처음과 마지막. 내가 걸고 있는 나의 유일한 위로.

 

내가 하나님과 터야 돼요. 똑똑하고, 사회적 지위 있고, 교활하고. 하나도 안 다치고. “오우! 사태 났네? 어우 난 아니야~” 정말 자기가 나와서 머리 띠를 졸라매고 이렇게 싸워줘야 되는데, 절대 안 해요. 그리고 괴롭히고.

 

여러분과 나는 보는 것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내 주님의 일을 이루어야 되고, 저들은 자기들의 육신의 욕심을 채워야 될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등에 업고, 저들은 원수를 등에 업고 나와 싸우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군인이에요. 우리는 마음이 주님께 터 있어요. 주님, 내 마음 잘 아시고, 여러분 마음도 잘 아시고.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 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 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12:3)

 

지금 하소연만 하고 있지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17:9~10) 이 날은 반드시 있습니다. ‘아무도 못 봤다. 끝났다. 아무도 모른다’? 반드시 행함이 있습니다.

 

교활하고 간교한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어요. 그런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피해 갑니다. 그런데 내 죄가 아무리 붉더라도, 주 앞에 엎드린 자,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는 정말 흰 눈 같이, 흰 양털같이 깨끗해집니다.

 

주님과 해결 안 되는 자기 마음을 움켜쥐고 있는 것으로 한 시도, 한 달도, 1년도 넘어가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 진실한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자기는 주님 앞에서 군사야. “넌 누구냐?” “Yes, Lord. I'm a soldier.” 난 군사거든요? ‘나 저 목사, 싫어. 나 우리 교회에 헌신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줘.’ 그게 문제가 아닌 거예요. 난 주님 사랑하는 거예요. 난 주님의 soldier. 나는 투명인간이 아닌 거지. 나는 주님이 여기 불러주고, 주님이 나와 같이 서 있어요. 실제로 그분은 나의 모든 것에서 나를 매일 보시고 인도하시는 나의 참 주인이십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우리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여서, 어제랑 오늘 거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내 마음을 다 보고 계시죠? 하나님, 정말 나를 용서하옵소서. 이 부족한 자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주 앞에 회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 부족함을 내가 감추기보다는, 무시하기보다는, 내 양심을 속이기보다는, 또 주님의 모든 외침이 내 속에서 버려지기 보다는, 외식하기보다는, 종교적 의식적으로만 주님 앞에 나아가기보다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똑똑한 척하고 아주 그냥 얌체같이 나만 살기보다는, 주님 앞에 진실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영혼들 다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거짓된, 겉으로만 믿는 정말 형식이 모든 것을 해줄 것이라고 그냥 마냥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 앞에 회개한 자, 주님의, 사하시는 우리 주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이 맡겨져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사는, 우리, 오직 주님으로 사는 우리의 본질을 다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는 주님 앞에 정말 진정하게 진실한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의 사하시는 모든 따뜻한 인자하신 그의 정말 우리를 정말 용납하시고 받아주시는 그 힘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원수에게 당하는 자 하나도 없게 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복음의 길을 성공으로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선교센터 YEH

 

[1]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2:6~9)

 

[2]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2:23~25)

 

[3]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대하 6: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