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용서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연합250817)

lks8284 2025. 8. 20. 06:24

250817연합 [용서받고 사랑받는다는 것]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요한계시록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자, 용서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받은 은혜의 참뜻을 모르면, 하나님을 배반하기 쉽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베풀기 위해, 얼마나 비싼 값을 치르셨는지 알아야, 그분의 뜻을 이해할 수 있고, 그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그분이 만드시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그런 진실한 은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고, 그에 상응하는 감사를 나타내는 자세들이 매우 부족하다.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받은 것은 대충 잊으려 하고, 그저 넘어가려고 하지만, 자기가 베푼 것에서는 크게 받으려고 한다.

이 세상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받으며, 하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심령에 모시게 되었다.

본문에서 이 세상 마지막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가야 할 모델들이 나와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를 대표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들은 구속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 삶을 내어놓고, 싸워서, 아무도 부르지 못하고, 그들만 부를 수 있는 하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세상에서 고생했지만, 승리한 자들인데, 그들은 구속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인데, 사함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구속받고, 사함받고, 속량받고, 다 받았다.

우리가 사함받았다면, 그 뜻을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대단히 깊이 있는 부분이지만, 헷갈릴 것은 없다.

우리가 어디에 속한 자인지 알아야 한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사함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대단히 하나님 앞에 무례하고, 너무 부덕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적 이해의 부족일 수도 있다.

주님께 대한 진정한 태도가 아니라, 부족한 언어의 이해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은 사함받았다고 하면, 큰 느낌이 없다. 성경에만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에서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 용서받았다는 말도 있다.

영어로는 forgiveness.

비슷해서, 중복되기도 하고, 별도의 뜻도 있다.

구속과 구원, 용서의 개념에 대해서 좀더 명확히 알아야 한다.

다르게 표현된 은혜의 실체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것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용서받았고, 구속받은 자들이다.

큼직하게 구원이라고 한다.

구원은 물에 빠졌는데, 끄집어 내거나, 불속에 있는데, 끄집어 내어 살려준 것이다.

아주 큰 범위에서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salvation, Deliverance

구원, 구속, 속량, 용서.

용서는 redemption.

값을 주고, 산 것이다.

값을 치르지 않았으면, 남의 것이다.

운명이 처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값을 치르고, 가져오면 구속이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은 구원을 받은 것이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 모두 지옥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셔서, 우리는 구원받았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한 것, 그것이 용서다.

이 구절에도 속량, 구속, 용서의 개념이 있다.

다 각기 다른 의미가 있다.

속량이란 말은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매우 잘 이해되는 개념이었다.

노예제는 20세기에 들어오며 다 없어졌지만, 그전에는 온 세계에 노예제가 있었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에는 노예제가 사회자체였다.

그 때, 내가 사랑하는 자가 노예로 팔려가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방관할 것이다.

사랑한다며, 내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그를 사려고 할 것이다.

나는 다 팔아서,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만 얻었다.

그것이 속량의 개념이다.

그래서, 그 노예는 나에게 속해 있다.

그냥 놔두었으면, 마귀가 그를 물고 갔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값을 무엇으로 치르었는가 이다.

돈으로 값을 치른 것과 다른 것으로 값을 치른 것은 다르다.

죄를 없앨 수 있는 것은 돈으로는 안된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여기서 말하는 피는 혈액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다.

죄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데, 다른 것이 대신해서, 그 값을 치른 것이다.

노예가 팔려가면 다시는 못볼 것인데, 자기 목숨을 내어주어 살린 것이다.

속량할 자를 살리고, 나는 죽는다.

너무 슬프다.

살려놨는데, 나는 죽는다. 같이 있지 못한다. 그런 식이다.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느헤미야 5: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누가복음에서는 죄를 탕감해주는 개념이다.

내가 참으면 된다. 너는 힘내라. 이것은 용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속량할 수 없다.

다만 용서할 뿐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근거로 용서한다.

용서의 권위는 구주에게 있다.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이고,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는 자는 긍휼 없는 법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용서는 속량개념과 관련없이 참는 것이다.

일만달란트 탕감의 개념이다.

그냥 손해보면서, 봐주었다.

그런데, 자기에게 조금 빚진 자에 대해서는 겁박을 한다.

우리는 너무 큰 용서를 받았다.

곳간 조금 내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누구도 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요한복음 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요한복음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요한복음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한복음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한복음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한복음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한복음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한복음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한복음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간음한 여자가 현장에서 잡혔는데,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보시고, 용서하셨다.

오늘날도 주님은 우리를 계속 용서하신다.

용서하시는 것은 그가 우리를 속량하신 것에 근거가 있다.

그는 언제나 용서하실 수 있지만, 값을 치러야 한다.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누군가 값을 치러야 한다.

누가 용서했으면, 값을 치러야 한다.

주님은 내가 용서했으니, 네가 값을 치르라 하지 않으셨다.

온전한 구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사람들은 사함받았다고 하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성령을 근심케 하면 안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다.

주님이 피흘리신 값으로 용서하는 것이다.

신앙생활 할 때, 자기 영혼의 가치를 너무 쉽게 본다.

나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값이 있다.

이렇게 쓰레기 중에 쓰레기인데, 내 가치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매일 감사하고, 매일 영광돌려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쪽 아니면 마귀쪽이다.

누구에게 속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다.

우리는 하고 싶은대로 할 자유가 있다.

하나님이 사 주셔서, 우리는 안전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함받았다는 개념을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일단 혜택을 받고나면, 돌변한다.

옛사람을 다 버려야 한다.

예수님 근처에 오면, 예수님 냄새가 나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의 피로 살려준 영원한 생명의 가치 있는 자로 승격한 사랑의 대상이다.

사함받는다.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속량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용서받은 개념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용서는 주님께서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너는 깨끗하다가 아니라, 너는 죄인인데, 내가 참아줄게 하는 것이다.

살려주었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올 때는 법적으로 구원받은 자를 손대지 못하는 줄 아는가. 아니다. 달려든다.

정말 거짓된 사람들 많이 보았지 않은가.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는 대단히 위험하다.

법으로 구원받았으니, 자동으로 되는 줄 아는가.

예수 명하시고, 천사들이 보호해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이 보호해서 되는 것이다.

밑에는 지옥불이 쫓아오고 있고, 무서운 전쟁속에서 뚫고 가는 것이다.

주님의 용서는 굉장히 소중하다.

주님의 속량은 굉장히 소중하다.

주님의 용서는 값을 치른 것이다.

조금만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간다.

하루에도 수십번 용서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용서하심으로 살고, 속량으로 죄에서 벗어나고, 하늘까지 보호받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 구속받은 자로서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되고, 겸손하게 크신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자들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