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14 마음의 할례(260329)

lks8284 2026. 3. 29. 21:58

260329주일 [마음의 할례]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2:25-29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영성이 타락하는 종교는 외적 요소에 크게 의지한다.

이것은 내면의 부족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이다.

자기들의 내면의 부족을 보충하려고, 외면을 채우려고 했던 것이 유대인의 신앙이다.

그들은 그런 면에서 잘못된 길을 걸었던 자들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택함받은 민족으로서 받은 할례 제도는 하나님께 무조건 용납되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대단한 영적 권세로 여기며 의지해왔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도 갖고 있는 종교적 유산, 외적 요소, 교회에 소속되었다는 것, 예배, 문화 등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확보해놓은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것들로 우리를 천국에 가게 하고, 축복을 받게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한다.

이런 생각은 과거 유대인들의 큰 잘못을 다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영적 보장 수단, 할례]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었고, 제사직을 주셨다.

이런 종교적 유산은 순수 혈통의 유산과 함께 자기들이 무조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증거로 할례를 들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무사히 통과되는 특권을 보장해주는 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유대인이 죄를 여간 범한다고 해서, 이 특권이 상실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조건 중 하나는 할례는 육신에 보이는 표를 두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다른 민족들과 구분되어, 그런 생각을 더욱 하게 된 것이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 유일하게 선택된 증거임은 맞다.

다만 이것은 외형적 증거일 뿐이다.

바울도 할례의 중요성은 인정했다. 할례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표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17:10-12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자손 사이에 맺은 언약이다.

할례는 유대인 남자 뿐 아니라, 외국출신의 종이라도 유대사회에 들어오려면 할례를 해야했다.

율법이 선포되기 전에도 할례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건이 있다.

모세의 아들들이 있는데, 할례를 받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려고 하셨다. 그 때 십보라가 서둘러 할례 의식을 행했다.

그렇게 하므로, 십보라는 자기 아들들도 살리고, 남편도 살렸다.

십보라는 할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들에게 할례를 주지 않으므로, 아들들도 죽고, 남편들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직접 할례를 행했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 앞뒤 문맥과 연결되지 않는 독립적인 사건이다.

이것을 보면, 유대사회에서 할례가 갖는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할례는 필수요소였다.

[순종하겠다는 언약의 표]

그렇다고 할례 자체가 어떤 영적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할례는 할례 받은 자가 이제부터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기능을 한다.

할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시각적 장치일 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가 영적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율법을 행할 때, 할례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할례는 순종하는 유대인에게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시각적인 표다.

본인이 잘 안다.

옷속에 감춰져 있지만, 본인은 다른 민족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표였다.

그런데, 할례 받으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다.

할례는 오직 율법을 온전히 행하려고 하는 자에게 비로소 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할례를 받은 자라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범한즉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는 것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로 확정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신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들이 비방하던 이방인과 다르지 않게 된다.

[죄를 씻을 필요성을 나타내는 표]

할례 자체가 죄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할례를 행한 자는 율법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책임이 더 주어진다.

할례를 왜 받을까.

할례 받는 중요한 영적 이유가 있다.

인간은 죄에 물든 채 태어난다. 저주를 자꾸 물려준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죄에 물들었는데, 마음에서부터 죄를 씻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할례가 있는 것이다.

할례는 유대인을 죄를 씻도록 하는 도구였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할례는 구원을 암시하고, 자유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할례는 사람의 죄성을 경계하고, 그러므로, 죄를 이기는 방법인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을 상기시켜준다.

할례는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을 기억시키는 장치다.

그럼에도, 예수님 오시기 전, 400년간 랍비들은 할례는 지옥에서 구원하다고 가르쳤다.

[할례는 지옥에서 구원한다?]

랍비의 가르침이 담긴 책에는 '어떤 자든 할례 받은 자는 지옥에 보내서는 안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자는 절대 지옥에 가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서는 율법을 범한 유대인의 할례는 더 이상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례는 열정적으로 지키면서, 나머지 율법을 범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9:25-26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으니, 이방인과 똑같다.

할례 받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는 할례 받지 않아 심판에 들어가는 이방인과 같은 심판을 받는다.

[무할례도 할례로 간주될 수 있다]

할례 받지 않는 자라도 율법의 요구를 준수한다면, 할례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유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8일 안에 부모를 통해 선서하면서 할례를 준다.

율법을 잘 지키겠다는 선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할례를 하지 않고, 선서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할례자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라면, 서약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무할례자도 할례자와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할례는 순종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만약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순종한다면, 할례 받은 유대인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듯, 똑같이 받으실 것이다.

[오히려 무할례자가 할례자를 심판하리라]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할례를 받고도 지키지 않는 자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순종하는 이방인들은 불순종하는 유대인을 심판하는 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이 있고, 율법을 행할 것을 자꾸 알려주는 할례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죄책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인이 재판장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종하는 이방인이 불충실한 유대인들에게 책망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의문(율법)과 할례를 가지고 있어도 율법을 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겉모습이 있다고 신자가 아니다]

할례가 있어도 참 유대인이 아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참 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유산은 놀랍다.

그러나, 외관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외관상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신다고 하셨다.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육신에 새겨진 할례가 진정한 할례가 아니다.

[마음의 할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마음)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했지만, 영적으로 유대인인 자가 유대인이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다.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마음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다.

원래 할례는 다른 사람이 해주어야 하는데, 위의 구절에서는 네가 스스로 하라고 하되, 마음 가죽을 베어내라고 한다.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진정한 할례는 육체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각자 마음의 할례를 스스로 행하고, 죄의 권능을 끊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 신학을 공부했다.

웨슬레는 감리교 창립자이고, 18세기 그리스도교회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마음의 할례라고 불렀다.

그렇게 한마디로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

참 하나님의 자녀는 내면으로 그런 자이지, 겉으로 요란 떠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외적 모습으로 증거되지 않는다.

교회 참석하는 것, 종교적 형식, 기도, 말씀이 아니라, 마음의 진실한 영적 상태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섬기려고 하는 자세다.

이 사람의 마음 상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참 표일 것이다.

율법의 지식은 사람을 구하는 능력이 없다.

구원하는 힘은 의문(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마음)에 있다.

구원은 신자의 마음 바탕을 통해 온다.

그러므로, 신자가 영적 지식이 있다고 해서, 구원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 자신의 영이 역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말씀의 지식을 갖고 있어서 구원받거나, 축복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구원받고, 축복받는 것은 사람의 신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 거룩한 심령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것이다.

구원은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받는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다보면,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본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이다.

신앙의 기준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은 죄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외적으로 종교적 탈을 쓰고 있었지만, 내면은 완전히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어떤 종교적 외형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마음의 죄가 씻기지 않았으니, 완전히 죄인이었다.

그들은 남들은 멸시하고,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했지만, 그 누구도 예수 없이는 구원의 길로 갈 수 없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고, 그분의 은혜로 완전히 깨어져서, 죄를 씻고, 마음에 언약을 맺었다.

다들 그런 자라고 믿고 싶다.

이와같이 그분을 믿고, 그분의 공로를 받아 내면을 씻고, 변화받아 새롭게 탄생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위한 삶을 살자.

나는 여러분이 오늘 이후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나를 가증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하나님께 용납되게 하는지 잊지 말기 바란다.

변화된 자, 죄 씻은 자,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 구원의 능력이 충만한 자 되기 바란다.